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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god. 예수님의 철학의 말씀. 09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97 2020-06-30 19:01:17

81. 예수께서 가라사대,   "풍요롭게 된 자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라. 그리고 힘을 가진 자로 하여금 그것을 부정하게 하라."

 

81절 재번역 : 예수께서 가라사대,  "정신적 깨달음을 통하여 나라(해탈, 열반, 해탈, 왕국)의 경지에 오른 자는 육체를 지배하는(다스리는) 지배자가 된다. 그리고 (영혼이 육체를 지배하는) 힘을 가진 자는 그 힘을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해석 - 81절의 "(정신이) 풍요롭게 된 자로 하여금 (육체를) 다스리게 하라" 이 부분은 29절의 "영혼이 몸으로 인하여 존재케 되는 상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육체"는 56절에서 등장하는 세속적인 탐욕에 빠져 있는 시체와 같은 육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풍요로운 상태" 즉, 정신적 깨달음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경지는 3절의 "나라"와 동일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수는 영혼이 육체를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하더라도 항상 겸손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82. 예수께서 가라사대,   "누구든지 나와 가까이 있는 자는 불과 가까이 있는 것이니라.

그리고 누구든지 나로부터 멀리 있는 자는 나라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니라."


 

해석 - 82절의 "불"은 10절의 "불"의 의미와 같은 "천국운동의 불씨"를 의미한다.

82절은 10절에서 예수가 던진 천국운동의 불씨를 구체적으로 다시 드러내고 있는 구절이다.

82절의 예수는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자는 내면에 천국운동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 하고 있다.

그렇지 아니하고 천국운동의 불씨를 내면에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나라에 다가갈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82절에서 "나라"는 "깨달음(득도, 열반, 해탈)을 통해서만 인지할 수 있는 영혼(정신)의 영역"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며, 다르게 표현하면 천국, 왕국, 세계로도 표현될 수 있다.

70강의 도올선생의 말씀에 따르면, 깨달음에 대하여 더 자세히 설명하면 "깨달음"은 완전한 깨달음과 불완전한 깨달음이 있다. 완전한 깨달음은 살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무여 열반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82절에서의 나라는 "불완전한 깨달음" 혹은 "유여 열반"의 상태라 할 수 있다.


 

83.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습들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 모습들 속에 있는 빛은 아버지의 빛의 모습 속에 가리워져 있다. 아버지도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아버지의 빛 속에 숨겨져 있다."


 

해석 - 83절은 29절과 50절과 관련 있는 구절이다.

83절의 '모습'은 영문으로는 image로 통일되어 표현되고 있지만, 의미를 해석 함에 있어서는 두 가지의 의미를 닮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나오는 '모습들'의 모습은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것을 의미하며, 나중에 등장하는 '빛의 모습'의 모습은 눈에 드러나지 않는 형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83절에서 예수가 전하고자 한 것은 밖으로 드러난 외면의 모습이 아닌 그 안에 감춰진 내면의 형상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99.9%의 인간은 누구나 상대방을 평가함에 있어 그 상대방의 겉모습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상대방의 겉모습을 통하여 상대방을 평가하는 주체는 자신의 외면이 아닌 자신의 내면, 영혼의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사물이나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주체가 자신의 내면 혹은 영혼이라면 평가의 대상이 되는 객채 또한 동등하게 다른 사람의 내면의 영역, 영혼의 형상이어야 동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83절은 예를 들면 29절의 "영혼이 육신을 통하여 존재케 되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사물이나 상대방의 실체를 알아보는 안목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8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하나님을) 닮은 너희 모습을 볼 때에, 너희는 행복하도다.

그러나 너희가, 너희 이전에 존재한, 그리고 죽지도 아니하고 보여지지도 아니하는 너희 형상들을 볼 때에는, 과연 너희가 얼마나 감내할 수 있으랴!


 

해석 - 84절의 '형상'은 83절의 나중에 등장하는 '모습'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84절의 첫 줄은 당시 유대인들이 믿던 유대 율법(현재 성경의 구약)적인 관점을 꾸짖는 의미에서 하신 말씀이다.

두 번째 줄에서 예수는 첫 줄에서의 외형적 모습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그 생명의 빛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에 세속적인 탐욕과 외면의 모습에 충실했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느끼면서 갖게 되는 정신적 괴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은 2절과 그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85.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담은 거대한 힘과 거대한 부로부터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너희에게도 합당치 아니하다.

만약 그가 합당한 자라고 한다면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해석 - 85절은 38절, 63절을 통하여 삶과 죽음의 의미, 그 차이에 대하여 예수가 말씀했던 것의 또 다른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85절은 당시 유대교의 율법(현재 성경의 구약 부분)을 부정하던 예수가 구약에 등장하는 '아담'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었는가를 매우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필요 이상의 큰 부와 권력에 대한 세속적인 탐욕과 권력의 욕구를 추구하는 인간을 상징하는 아담.

예수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낼 수 없는, 육신을 갖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진실로 추구해야 할 대상이나 진리가 '아담'이 아님을 깨우치고 있다.


86.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는데, 인간의 자식인 나는 머리를 뉘어 안식할 곳조차 없도다."

 

해석 - 86절은 우선 15절에서 예수가 언급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구절이다.

또한 86절에서 예수는 모든 권세로부터 자유로운 자기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81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자기 부정'을 매우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86절은 42절의 '방랑하는 자'를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86절은 "son of man"이란 의미를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86절의 "인간의 자식(인자)"은 영문으로는 "son of man"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표현은 성경에도 많이 등장하고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son of man(인간의 자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인간 예수가 어떤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는지를 알고, 그가 사용했던 언어로 번역했을 때 son of man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러 문헌들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 예수가 '아람어'를 기본 언어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아람어'는 "아랍어"와 매우 비슷한 언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번역의 편의상 son of man을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영문 'son of man'을 우선 아랍어로 번역하면 '??? ???'가 되며, '??? ???'을 영문으로 재번역하면 'Adam's son'이 되며, 이를 한글로 번역하면 '아담의 아들'로 번역이 된다.

결과적으로 "(영문) son of man = (아랍어) ??? ??? = (영어) Adam's son = (한글) 아담의 아들"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얻은 결과에서 '아담'이 갖는 상징성을 다시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아담'은 쾌락과 세속적인 탐욕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인간을 상징한다.

위와 같이 '인간의 아들'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간의 자식(인자)"이라는 표현들이 지난 2,000년 동안 복음서의 기자와 학자들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인자 담론'의 예수, '신아 아들' 예수가 자신을 낮춰 부르는 의미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은 도마복음 전체를 통하여서도 이미 곳곳에서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는 사실이지만 특히 15절의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자" 그리고 86절의 쾌락과 세속적인 탐욕을 추구하는 평범한 인간의 자식이란 의미로서 "인간의 자식"이란 표현을 예수가 직접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성경에 등장하는 "인자"라는 표현들 또한 위와 같은 시각에서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86절의 '안식'의 의미를 정신적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결론적으로 86절의 예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정신적 방랑생활을 하고 있으나 완전한 깨달음,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없음을 탄식하고 있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죽으면 다시는 볼 수 없는 한낱 인간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예수가 정말로 기독교가 2,000년 동안 인류를 세뇌하는데 이용해 왔던 '신의 아들'이었다면, 예수는 86절에서와 같이 '안식할 곳이 없다'는 표현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안식할 곳'을 실제로 누워 쉬는 잠자리라고 이해하면 86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도 있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하여 끊임없이 탐구하는 방랑을 통하여 "빛의 존재"를 깨닫고 해탈의 경지에 올랐으나 실제 자신이 누리는 권세는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누워 잘 곳도 조차 없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를 통하여 예수가 전하고자 한 것은 높은 지위와 권세를 갖더라도 겸손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86절은 현재 교회와 목사들이 누리고 있는 권세가 예수의 가르침과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확연히 드러나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87. 예수께서 가라사대,   "한 몸에 매달리는 그 몸은 얼마나 비참한가! 그리고 이 양자에 매달리는 그 영혼은 얼마나 비참한가!"


 

해석 - 87절은 29절, 55절, 81절에서 예수가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과 맥이 닿아 있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87절을 통하여 예수는 육신을 위한 쾌락과 큰 부와 권력에 대한 속세의 탐욕을 추구하는 것으로로부터 벗어나 내면의 빛과 주변의 빛의 존재 가치를 알아보고, 궁극적으로 안식(열반)의 상태에 수 있도록 끊임없이 탐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87절에서 예수는 29절에서 언급하였던 "영혼이 육신의 몸을 빌어 존재케 되는 상태가 되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함을 설파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88. 예수께서 가라사대,   "천사들과 예언자들이 너희에게 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너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그런 것들을 너희에게 주리라.

그때엔 너희도 보답으로, 너희가 세상에서 발견한 그런 것들을 그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너희 자신에게 자문해보라, '언제나 그들은 다시 와서 그들 자신의 것을 가져갈 것인가?' 라고."


 

해석 - 88절을 의역하여 보았다.

88절을 조금 더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는 전후 문맥 상 'have'를 "경험하다", 'take'를 "속이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88절을 의역하면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 천사와 예언자(라고 하거나 , 혹은 불리는) 자들이 너희에게 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너희가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는 그런 것들을 전해 줄 것이다.

그때엔 너희도 보답으로, 너희가 경험한 것들을 전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 자신에게 자문해보라, '언제쯤이면 그들이 그들만의 것으로 속이려 하게 될 것인가?'라고." ]

 

88절은 유대인의 율법(구약)을 부정했던 인간 예수가 당시 천사와 예언자들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이다.

88절에서 예수는 예언자 혹은 천사들이 전하는 것들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며, 경험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도반들에게 말하여 주고 있다.

그뿐 아니라 예수는 천사와 예언자들이라 하는 자들이 과연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갖고 도반들을 속이려 할 수 있는 때가 오기는 할 것인지 의문을 표현하고 있다.

88절은 구약의 천사, 예언자들의 소리가 얼마나 공허한 메아리인가를 잘 드러 주고 있는 구절이다.


 

8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너희는 잔의 겉만을 씻으려 하느뇨?

안을 만드신 이가 또한 겉을 만드신 이라는 것을 너희는 알지 못하느뇨?"


 

해석 - 89절은 22절, 29절과 관련되는 구절로써, 율법 특히 이원론적인 유대인의 율법을 부정하는 예수의 사상이 매우 극명하게 드러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89절을 통하여 예수가 큰 부와 권력에 대한세속적인 탐욕의 욕구와 같은 외형적인 치장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또다시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89절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는 자신의 외면, 외형의 모습에만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내면의 위대함, 가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위하여 더욱 노력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9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에게로 오라!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다스림은 부드럽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안식을 발견하리라."


 

해석 - 90절을 이해하기 앞서 우리는 먼저 두 가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이 자신의 설교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대하려고 했다는 점.


둘째, 예수는 자신이 누군가를 구원하거나 안식을 줄 수 있는 인물로 비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90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인간 예수가 살던 당시의 시대상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갈릴리 지방의 민중들은 정부가 부과하는 엄청난 세금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고된 멍에를 짊어지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90절에서의 예수는 당시 민중들을 상대로 설교를 하면서 자신에게 설교를 듣는 것이 그들에게 큰 부담(멍에)을 주지 않을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예수는 민중들 각자의 안식(깨달음)은 스스로 찾는 것이라는 사실을 선언함으로써 예수 자신은 결코 구원자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음과 같이 비유할 수 있겠다. 예수는 민중들이 밥 먹는 법을 가르쳐 줄 뿐, 밥을 떠 먹여 주는 역할자는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90절은 기독교가 지난 2,000년 간 예수를 구원의 상징으로 이용하여 왔다는 사실과, 구원론이 신자들을 종교의 권력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도구였음이 분명하게 드러난 구절이다.


이상..              09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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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피린 ip1 2020-07-01 19:46:10
    아스피린이 돌통이를 인간쓰레기 혹은 바퀴벌레색퀴라 부르는 것은 돌통이가 대한민국과 북한에 특대형 재앙을 가져다주고 어마어마한 특대형 경력위조, 현대사 위조를 자행한 김일성과 그의 자손들을 칭송하고 빨아대면서 그놈들의 범죄에찬 역사와 경력들을 슬쩍 슬쩍 은근히 선전선동, 찬양하고 있기때문이다.
    오늘 지금 이시각도 나의 고향이 있는 북한에서는 나의 친척들과 추억을 함께 쌓은 소싯적친구에서 학창의 친구들, 힘들었지만 활기에찼던 군복무시절에 우정을 쌓았던 친구들 그리고 한동네에서 같은 삶의 터전에서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이 돌통이 색퀴가 흠모하여 칭송하고 빨아대는 김일성과 그 자손들에 의하여 현대문명을 향유하기는 고사하고 인간의 초보적 권리인 하루 세끼 끼니조차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또한 김일성과 그의 후손들의 사리사욕과 이기심으로 말미아마 핵전쟁의 위협속에 늘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인간쓰레기들을 빨아대는 돌통이의 행위는 그러지않아도 충분히 어려운 북한사람들의 삶에 보다 더 큰 고통을 가증시키는 행위이며
    그러지 않아도 김정은의 핵위협속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에 더큰 고통을 가증시킨다
    이 쓰레기색퀴는 이런 김씨 인간백정들을 항일영웅이라 추앙한다
    이 쓰레기 새퀴는 탈북자들이 이런 쓰레기같은 김씨일가들보다 못하다고 지꺼렸다
    이러한 연고로 아스피린은 돌통이를 인간쓰레기, 바퀴벌레색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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