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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관련 책임자와 무책임자..웃기는 일
Korea, Republic of 돌통 0 256 2021-03-08 18:40:32
●  한국전쟁 (6.25)       ○  책임자와 무책임자




일제가 패망한 이후의 권력의 공백처럼 생성된 그 시기 그 기간에, 남북은 이견이란 벽돌로 이념의 장벽을 쌓아두고는 실제로는 권력의 이해와 개인의 이익만을 도모했다. 남북의 점령군에 기대어 상대방을 향해 겁박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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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합동하여 갈등을 키워 전쟁에 이른 셈이다. 북한에서는 말로는 평화를, 손으로는 전쟁을 준비했다. 남한에서는 말로는 북진통일을 부르짖었지만, 손으로는 제 주머니 채우기에 정신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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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38선 부근에서 5대5의 공방전을 적당하게 하고 있었다면, 양측의 정규군끼리의 교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어떻게든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형편없이 한쪽으로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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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작용으로 미군과 유엔군이라는, 외국군의 힘으로 북진했다. 그러자 또 다른 외국군, 중국군의 힘으로 다시 밀렸다. 이렇게 전선이 오르내리면서 마치 놀부네 박을 썰듯 동족의 허리에 톱질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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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이 출렁거리면서 정규군의 교전 위에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인들끼리의 학살도 마다 않는 끔찍한 전쟁이 됐다. 군인 사상자(외국군 제외)가 150만인데 민간인 사상자가 350만이나 발생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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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전을 일으킨 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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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는 전쟁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권력도 커다란 책임을 져야 한다. 무책임하게 전쟁준비를 방기하여 비극을 열배 백배로 키운 책임도 전쟁을 일으킨 책임에 못지않다. '저 놈이 나쁜 놈'이라고 해서 무책임의 책임이 면탈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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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은 유책임의 책임을 져야 하고, 이승만은 무책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한국전쟁이란 전면전이 터지는 순간을 어디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적당할까. 전쟁은 38선 전역에서 동시에 시작했지만 글은 한 곳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을 글로 맞이할 지점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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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북방, 지금은 춘천호에 잠긴 북한강의 모진교라는 다리를 찾아 그곳에서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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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간단하다. 모진교를 넘어온 인민군 2군단 2사단의 공격력과 이곳에서 춘천 홍천 방면을 지키고 있던 국군 6사단이 방어력이 춘천지역에서 충돌했고, 국군이 한국전쟁 개전 초기 전투에서 유일하게 이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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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 머리 속에 쌓여온 한국전쟁의 서사는 “6월 25일 새벽 4시, 저 나쁜 놈들이 모두들 편안하게 쉬고 있는 주말 새벽을 틈타 치사하게 기습적으로 남침하여 ...... 그래서 저 놈들은 정말 나빠도 더 나쁜 놈들”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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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기 짝이 없다. 개전에 패하고는 엄마 치맛자락 붙잡고 징징거리는 꼴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지리멸렬하고도 저 놈 나쁜 놈만 외친다. 전쟁이 터질 것이라는 수많은 징조에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권력이 할 소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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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게 적이 주말에 취약하면 주말을 택하는 것이고 새벽이 효과적이면 그 시간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 아닌가. 기습 타령도 우습다. 기습을 당한 것이 문제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지휘부가 얼마나 멍청했으면 당하고나서 적군의 기습을 비난하는가.



오직 먼저 개전했다는, 남침 팩트 하나에, 목숨을 걸어 나쁜 놈이라고 욕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허무한 서사이다. 자신에게 향해 오는 책임추궁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저놈에게 팔뚝질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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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는 국군의 방어가 무기력했고 남한 땅은 쑥대밭이 됐다는 것이다. 전장의 일선에서 전투에 나선 용사들이 용감했던 게 오히려 허무감을 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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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6사단이 방어한 춘천 전투만은 제대로 맞서서 제대로 방어했다. 김일성은 춘천전투의 실패 책임을 물어 인민군 2군단장과 2사단장을 경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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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춘천전투가 빛나는 승전으로 정립된 결정적 계기는 소련에서 비밀이 해제된 문서들을 8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가 입수하여 분석한 것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소련의 군사고문단장 라주바예프의 보고서를 우리나라에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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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바예프는 이 보고서에서 “북한군이 춘천지역에서 3일간 발이 묶이며 한국전쟁 전체적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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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50년 11월부터 1953년 9월까지 소련 군사고문단장 겸 무관, 북한주재 소련대사로 근무했다. 라주바예프의 보고서는 인민군 문서와 참전자의 관찰내용을 기초로 작성하여 소련군 총참모장 슈테멘코에게 보고한 것이다. 스탈린에게도 보고되었다.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춘천전투는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았다. 한국전쟁사에서 전투의 평가마저 외국의 평가를 가져와서 자각한 것은 뭐라 하지는 않기로 하자.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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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대첩’이라는 찬사의 명칭이 붙여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2003년부터는 국방부와 육군 제2군단이 춘천대첩 기념행사를 해오고 있다. 한국전쟁 10대 주요 전투에 포함돼 있고, 3대 승전 기록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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