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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김일성 죽음의 비밀 05편 마지막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104 2021-05-01 18:21:04

05편     (마지막편)

 

 

김정일이 결심한 시점은?
 
  그렇다면 김정일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언제부터 아버지 김일성을 죽음으로 몰고 갈 생각을 갖게 됐을까.

 
  전직 CIA 요원으로 북한 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리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방북했던 카터와 김일성의 회담에서 오간 대화가 아들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을 제거하기로 결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주장한다.

 
  마이클 리는 “김일성이 카터를 만난 자리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성공하면 자신이 다시 권력 전면에 나서서 향후 10년간은 더 나라를 위해서 일할 계획이라고 말한 것을 김정일이 도청했고 그것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약 김일성이 남북정상회담에 자신 대신 김정일을 내보냈으면 자신이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김정일이 아버지를 제거할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고 봅니까.
 
  “35년간 일해 온 김일성의 심장 전문의를 해고시켜 버리고 김일성과 관련한 각종 의무기록을 압수한 것이 그 실행의 첫째였다고 봅니다.”

 

―새로운 주치의를 임명하면 해결되는 일이 아닌가요.
 
  “그 새로운 주치의라는 사람이 루마니아에서 공부를 하고 막 돌아온 풋내기 의사라는 게 문제였죠. 그가 김일성의 심장 상태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김일성은 사망해 버렸습니다.”

 
  ―근거가 뭡니까.

 
  “전하철 비망록입니다.”

 
  ―김일성 사망과 관련한 전하철의 기록은 북한 노동당 출판사가 97년에 펴낸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에 소개돼 있습니다.

 
  “거기에는 김일성이 사망하기 직전까지의 기록만 실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본 전하철 비망록은 사망 이후의 기록들도 함께 실려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기관이 입수했습니까.

 
  “그걸 지금 세세하게 밝힐 수는 없습니다. 입수 시기는 최근이라고만 밝히겠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마이클 리가 주장한 김일성이 카터와의 선상회담에서 다시 북한 통치를 위한 전면에 나서야겠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민간부위원장도 당시 1월 초 《**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발언을 유추할 수 있는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정종욱 부위원장은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이었다. 김일성과 회담을 마친 카터는 곧바로 청와대를 방문해 김영삼 대통령을 만났다. 정종욱 부위원장은 외교안보 수석으로서 그 자리에 배석했고, 《**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카터는 메모를 해온 수첩을 꺼내 ‘김일성이 이렇게 말했다’며 전했다. 그때 기억나는 것은 ‘내가 (김정일에게) 맡겨놓았더니 일이 이렇게 됐다’는 대목이다.…”

 

●  김정일에 대한 김일성의 질타가 죽음으로

 

 

 

북한 문제 전문가인 김광인 코리아선진화연대 소장의 생각은 마이클 리의 견해와 약간 다르다. 김 소장은 “김정일의 김일성 제거 계획은 93년 12월부터 본격화했다”고 주장한다.

 
  ―93년 12월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북한의 제3차 7개년 경제계획을 결산하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21차 전원회의가 93년 12월 8일에 열렸습니다. 그 회의에서 김일성은, 김정일이 주도하면서 이끈 3차 7개년 경제계획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비판에 그치지 않고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다시 바로잡아야겠다’면서 권력 전면에 다시 나서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김일성이 김정일과 본격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 보면 됩니다.”

 
  ―당시 북한의 실권자가 김정일이었다고 해도 주석인 김일성이 북한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그 이전까지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북한이라는 사회가 어떤 사회입니까. 게다가 실권자로 모든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북한은 제3차 7개년 경제계획을 1987년 4월 개최한 최고인민회의 제8기 2차 회의에서 확정, 발표했다. 87년에 시작해 93년에 끝났다. 이 경제계획을 결산하는 회의가 93년 12월 8일에 열린 것이다. 이 회의는 김일성의 사회로 진행됐고 정무원 총리 강성산이 그 결과를 보고했다.

 
  《로동신문》이 회의 다음날인 12월 9일자에 게재한 보도문은 경제성장 등의 성과를 자랑하면서도 사실상 경제계획의 실패를 자인하고 있다. 보도문은 제3차 경제계획 시기의 대외 경제 상황을 “소련과 동구라파 사회주의의 좌절 등 반사회주의 공세 강화로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커다란 장애와 난관이 조성됐다”고 분석하면서 “우리 경제 건설에 큰 피해로 전반적 경제 발전의 속도와 균형을 조절하지 않을 수 없게 돼 제3차 7개년 계획을 원래 예견한 대로 수행할 수 없게 하였다”고 적고 있다.

 
  ―마이클 리는 카터와의 선상회담에서 김일성이 한 발언 때문에 김정일에 의한 김일성 제거 계획이 본격화했다고 주장하던데요.

 
  “이미 93년 말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김일성이 선상에서 그런 발언을 했든 안 했든 김정일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자꾸 김영삼과 김일성이 하기로 했던 남북정상회담을 얘기하는데 김정일의 결심은 그 이전에 섰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김일성 주치의인 김용서의 해임이 이루어진 시기가 김일성과 카터와의 회담 이전이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김정일이 김일성 제거 결심을 한 시점을 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지만 김일성 죽음과 김일성 주치의의 해임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두 사람 다 일치하는 견해다. 김일성 주치의의 해임 사실이 이번에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짐으로써 결국 김일성 죽음에는 아들 김정일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의도적인 개입’을 했다는 그동안의 방증은 사실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일반 탈북자가 그걸 어떻게 알까.?  또 저 마이클 리 라는 사람은 그동안 자기의 주장등이 맞은적이 거의없고 거짓말등을 너무 않이 했어서 신뢰가 안든다.

 

 

         이상....         끝



   (30대 때의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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