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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돕다 (3)
Korea, Republic of 김태산 1 276 2021-12-05 12:28:36
전번에 쓴 "하늘이 돕다." 2편에서는 내가 비자 없이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 사실까지 썼다. 오늘은 내가 체코를 떠나기 하루 전에 있었던 사실 하나를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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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썼듯이 9월 9일은 북한의 명절이여서 해외노동자들도 충성의 선서 행사를 한다. 그런데 체코에는 공장이 5개였기에 노동자들이 한곳에 모여서 선서를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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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보위원과 통역원들을 각 공장에 나가서 9월 8일에 선서모임을 해주고 오라고 9월 7일 오후에 모두 내보냈다. 보위원은 제일 멀고 처음 가는 곳이기에 내가 가차를 타고 데려다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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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그들을 멀리 보내놓고 9월 9일에 한국으로 망명 할 것을 결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9월 7일 오후에 보위원과 함깨 기차를 타고 멀리있는 부직포 생산공장으로 갔다. 보위원은 자기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르고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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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가 넘어서야 여성노동자들의 숙소에 도착했다.
나는 노동자들에게 보위원을 소개 해주고는 내가 전에 숙소에 보관해두었던 낚시대를 꺼내가지고 미끼를 준비해서 얼마 멀지 않은 호숫가로 낚시를 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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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낚시를 나가는데 여성 노동자 두명이 저들도 가겠다고 빨쭉 거리며 따라 나섰다. 나는 싫지가 않아서 그들을 데리고 호수로 갔다. 어쩌면면 보위원이 따라가 보라고 임무를 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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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9월의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낚시를 드리웠는데 그리도 잘 물리던 고기가 그날따라 입질도 아니한다. 점점 지루해 오는 중에 크게 입질이 와서 낚싯대를 훅 당기니 고기가 물렸다. 조심히 줄을 감아 올리는 때에 이상한 변수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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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큰 힘도 안주었는데 갑자기 낚싯대의 허리가 툭 하고 부러지는 것이었다. 아니 낚싯대가 부러지면 흔히 제일 가는 초리대가 나가는데 굵은 허리가 부러지는 꼴은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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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낚싯대는 부러졌지만 고기라도 건지려고 줄을 감아보니 고기마저 떨어졌다. 허리가 부러진 대를 가지고는 더 낚시를 할 수도 없거니와 재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확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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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부러진 낚싯대에 낚싯줄을 감아서 풀밭에 획 집어던지면서 애들에게 “재수 없다. 본사로 지금 돌아가겠으니 너희들은 들어가서 보위원에게 내가 돌아갔다고 전하라.”하고는 기차 역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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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보위원에게서 온 전화를 받으니 “지금 어디인가? 여기서 자고 내일 같이 간다고 하고는 왜 혼자 가는가?” 를 묻는다. 낚싯대가 부러지고 잠자리도 별로여서 돌아가니 내일 본사에서 보자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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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어서 역전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앉는 로컬 역전에서는 다행히도 마지막 열차가 출발을 앞두고 있다가 내가 열차에 오르자마자 출발을 한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유럽은 지방을 연결하는 간이철도에는 심야 열차가 없다. 만약 그때에 정말 조금이라도 늦어서 그 마지막 기차를 못 탔더라면 나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12시가 될 무렵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자고 온다더니 웬 일인가?”고 놀란다. 나는 말없이 독한 술을 두어 컵 마시고 잠이 들었다.
그 것이 내가 체코에서 자는 마지막 잠이 될 줄은 상상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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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인 9월 8일 아침 일찍 눈을 뜨니 이상하게도 오늘 무조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몰려와서 잠자는 아내를 깨워서 오늘 비행기표를 당장 예약하라고 과업을 주었다.
아내는 "아니 내일 떠난다고 하고는 왜 갑자기 이러는가?" 하며 툴툴 거린다. 나는 빨리 움직이라고 큰소리를 치고는 9시에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마지막 선서모임을 치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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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오니 마치도 우리 세 가족을 위해 마련한 듯이 좌석이 딱 세 개만 남아서 다행이도 예약을 했다고 아내가 말한다. 나는 그때에도 그 모든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만 여겼다.
나는 참으로 감사함을 모르는 오만하고 건방진 존재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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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9월 8일에 체코를 출발하여 독일을 거쳐 9월9일 무사히 인천에 내렸다. 계획했던 대로 9월9일에 출발하려 했다면 우리 가족은 선서를 마치고 돌아온 보위원의 감시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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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번 글에서도 썼지만 다시 한 번 쓴다.
해당 조사를 다 마치고 조사관이 우리에게 한 말이다.
“정말 모르고 왔다면 알려 드립니다. 김선생님이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즉 9월 10일에 선생을 대신할 새로운 사장과 선생님을 데리고 나갈 사람 두 명이 쁘라하 비행장에 내렸습니다. 북한 대사와 보위원이 함께 비행장에서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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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우리 부부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나는 한국에 와서도 계속 낚시를 다녔지만 낚싯대 허리가 부러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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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 순간에 낚싯대가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나는 마지막 기차를 못 탔을 것이고 그 다음 날에 체코를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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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하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우리 가족은 지금 살아있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다시 한번 나와 우리 가족을 살려준 분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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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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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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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란 ip1 2021-12-05 16:15:41
    정말 신이 도우신거네요.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자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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