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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남침유도설) 그게뭔지.!!
Korea, Republic of 돌통 0 202 2022-06-30 22:13:51

미국의 6.25 전쟁 남침유도설에 관한 소견!!!



최근 필자는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한 1941년 12월 8일 이후의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필자가 이 같은 자료를 읽는 이유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관한 책을 저술할 목적에서다. 솔직히 냉전 이후의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가 되어 있다. 



그런데 냉전 이전, 특히 6.25 전쟁 전후에 관한 필자의 이해가 일반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6.25 전쟁 전후의 한미관계에 관해 글을 읽고 있다.


그러면서 확인한 놀라운 사실이 있다. 6.25 전쟁 남침유도설에 관한 부분이다. 6.25 전쟁을 북한이 남침했다는 것은 오늘날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의도적으로 유도했는지에 관한 논쟁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제기된 사항인 반면 아직도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듯 보인다.



1. I.F. Stone, The Hidden History of the Korean War (New York: 1952), pp. 1? 66


■ 《번역》


1. I.F. 스톤, 한국 전쟁의 숨겨진 역사 (뉴욕: 1952), 페이지 1?66



2. D.F. Fleming, The Cold War Its igins, 1917? 1960 (Garden City, N.Y.: 1961), pp. 592? 608


■ 《번역》


2. D.F. 플레밍, 냉전과 그 기원, 1917?60 (가든시티, 뉴욕: 1961), 페이지 592?608



3. Stephen E. Ambrose, Rise to Globalism: American Foreign Policy, 1938? 1970 (Baltimore: 1971), pp. 192? 97.


■ 《번역》


3. Stephen E. Ambrose, 글로벌리즘에 일어서다: 미국 외교 정책, 1938?70 (볼티모어: 1971), 페이지 192?97.



4. Joyce Gabriel Kolko, The s of Power: The World United States Foreign Policy, 1945? 1954 (New York: 1972), pp. 565? 85


■ 《번역》


4. 조이스와 가브리엘 콜코, 권력의 한계: 세계와 미국의 외교 정책, 1945?54 (뉴욕: 1972), 페이지 565?85



4. Bruce Cumings, The igins of the Korean War: The Roaring of the Cataract, 1947? 1950 (Princeton: 1990), especially


■ 《번역》


4. 브루스 커밍스, 한국 전쟁의 기원: 백내장의 울음소리, 1947-1950 (프린스턴: 1990),~ 


~~란 제목의 저서에서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침을 미국이 유도했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경우 이처럼 중요한 문제에 관해 거의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듯 보인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남침유도설은 옹진반도에서 한국군이 북한군을 먼저 공격했는지 여부와 같은 매우 낮은 수준, 전술적인 수준에서 남침유도설을 다루고 있는 듯 보인다.


?남침유도설에 관해 한국인이 저술한 논문은 이완범이 역사와 현실 제62호, 2006.12, 377-397 (21 pages)에 기고한 한국전쟁 발발 직전의 상황 : 내전설과 남침유도설에 대한 비판적 조망 


-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정병준, 돌베개, 2006) 란 논문이 유일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조차 필자가 생각한 수준에서 남침유도설에 관한 논리를 전개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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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필자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침을 미국이 유도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이 같은 관점이 제기된 반면 한국인의 경우 거의 연구가 없다는 사실,  이 같은 관점에서 논리를 전개하고자 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부분에 추가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는 사실을 보이고자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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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침을 미국이 유도했다는 관점 측면에서 필자가 추가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자료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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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이전까지 거의 5년의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이 남한과 북한을 전혀 이질적인 체제로 전환시켜 놓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남한 지역을 반공 중심 체제로 전환시킨 반면 소련은 북한 지역을 완벽한 공산세계로 전환시켰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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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남북한 국민 모두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열망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승만, 조병옥, 이범석, 신성모와 같은 인사들은 지속적으로 북진 통일을 주장했다. 북한의 김일성은 물론이고 최용건 등 많은 북한 인사들이 남진통일을 외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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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중국이 공산화된 1949년 10월 1일 이후 조선인민해방군으로서 국공내전에 참전했던 거의 2개 사단 규모의 조선인들이 북한 지역으로 넘어왔는데 이들의 경우 남북통일에 대한 의지가 매우 높았다. 이들이 북한군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6.25 전쟁 이전에 이승만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넷째, 1949년과 1950년 당시 소련군의 무기가 북한군으로 대거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한국과 미국이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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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6.25 전쟁 몇 개월 전부터 38선 부근에 있던 북한 주민을 38선 이북 몇 킬로미터 지역으로 소개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이승만조차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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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6.25 전쟁 발발 며칠 전부터 38선 부근에 북한군이 밀집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승만은 물론이고 미국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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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실을 놓고 볼 때, 북한군의 남침은 결코 예기치 못한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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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실에 더불어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것에 대비하여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한 1949년 7월 초순 이전 미국이 나름의 전쟁계획을 이미 수립했다는 사실이다. 


남침이 있는 경우 먼저 유엔에 대응을 호소한 후 유엔군을 편성하여 경찰활동 형태로 참전해야 할 것이란 내용의 보고서를 미국은 작성했는데, 6.25 전쟁은 이 같은 계획에 입각하여 그대로 수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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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불어 미국이 남침을 유도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여러 자료가 있다. 6.25 전쟁 당시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했던 Harold Joyce Noble는 Embassy at War(전쟁 중인 해럴드 조이스 노블리 대사관)란 제목의 책에서 1949년 당시 미국이 주한미국 대사관을 일본으로 옮길 구상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6.25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한반도에 있던 미군 가족들이 이미 미 본토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I.F. Stone(I.F.스톤)은 (The Hidden History of the Korean War)=(한국전쟁의 숨겨진 역사) 란 제목의 상기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상기 사실 이와에 The Hidden History of the Korean War(한국전쟁의 숨겨진 역사)란 제목의 책에서 소톤은 구체적인 자료를 거론하여 6.25 전쟁을 미국이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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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6.25 전쟁 발발 직후 미 국방성을 방문하여 국방성 인사를 만나보니 6.25 전쟁은 이미 예견된 전쟁이었다고 말했다는 사실, 미 정보부서에 근무하던 현역 미 해군 소장(실명을 거론)이 6.25 전쟁 도발 일자를 거의 예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6.25 전쟁 발발 직전 한국을 방문했으며,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시 미 국무장관이었던 덜러스의 발언을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미 의회의 저명 인사인 코넬리의 발언, 맥어더, 투르먼의 발언을 인용하여 6.25 전쟁을 미국이 유도했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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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극동군사령관 맥아더는 6.25 전쟁 발발을 본인이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고 청문회에서 주장했는데 이 같은 맥아더의 발언이 거짓이란 사실을 스톤은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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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6.25 전쟁에 대한 트루먼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의 대응이 마치 사전에 충분히 준비한 형태의 것이었음을 스톤은 구체적은 사례를 보이며 입증하고 있다.


?6.25 전쟁을 미국이 의도적으로 유도했다는 관점은 6.25 전쟁으로 인해 미국이 안보적 측면에서 엄청난 이득을 보았다는 사실로 인해 신빙성이 더해지고 있다.


?1949년 8월 29일의 소련 핵실험과 10월 1일의 중국 공산정권 출범 이후인 1950년 1월 투르먼을 중심으로 한 미국은 핵전쟁, 재래식 전쟁, 반란전 등 다양한 형태의 전쟁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안보체계 전환을 추구하고 있었는데, 당시 미국의 병력과 국방예산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당시 미국은 소련과의 핵무기를 이용한 전면전만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새로운 전쟁 계획에 입각하여 1950년 4월 미국은 NSC-68이란 계획을 수립했는데 이 계획의 경우 기존 국방비와 비교하여 적어도 3배의 국방비가 소요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예산을 염출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미국의 심각한 고민이었다. 


6.25 전쟁을 계기로 투르먼은 이 계획을 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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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1950년 당시 미국은 일본에 대한 점령을 종료한 상태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화협정 이후 미군의 일본 주둔 명분이 미약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6.25 전쟁을 계기로 미군이 일본에 주둔할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쫓겨온 장개석 정부를 지원할 방안이 없었는데 6.25전쟁을 계기로 그 명분이 생겼다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1949년에 창설되었지만 지리멸멸 상태에 있던 나토가 6.25 전쟁을 계기로 본 궤도에 올랐다고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6.25 전쟁은 1991년까지의 거의 40년 동안의 미국의 냉전 체제의 기틀을 마련해준 전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 6.25 전쟁 직전 한국을 방문한 후 일본에서의 덜러스의 발언과 행적, 에치슨 미 국무 장관의 발언 등을 인용하며 이미 1952년 스톤은 6.25 전쟁을 미국이 유도했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6.25 전쟁을 미국이 유도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중요한 사안에 관해 한국인들이 연구한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할 다름이다. 


1964년 당시 베트남전쟁에 참전할 명분 조성 차원에서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항이다. 문제는 1950년 당시 발발한 6.25 전쟁과 관련하여 아직도 미국 학자들의 경우 미국이 남침을 유도했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반면, 한국인들의 경우 거의 연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항공기, 전차 및 함정 구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같은 한국의 기본적인 역사 연구아닌가? 이 같은 것들도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정권과 인사들이 애국애족과 국가안보를 논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생각해본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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