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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시]눈물의 끝은 어디(3)
Korea, Republic o 관리자 1 16565 2009-01-12 00:44:54
한 달 후.
거리엔 공시문이 나 붙었다.
산천초목도 비분에 떨 악의 공시문. 그 앞에서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범죄자 이분이를 총살함에 대하여
국가의 신경인 통신선을 절도한 범죄자 이 분이를 정부의 위임에 의하여
시 보안서는 내일 낮 정오 수성천 임시 사형장에서 시범적으로 공개 총살한다.
전체 시민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가하여 강성대국의 전진을 가로막는
범죄자의 종말을 통해 이 시대 공민의 의무와 사명감을 깊이 자각하라.
붉은기 높이 들고 나아가는 우리의 전진을 가로 막을 자 이 세상에 없다.
혁명도상에서의 있을 수 있는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시 방관한다면
주체 초석의 프로레타리아독재는 언제든 과녁의 중심을 명중할 것이다.
x x x x년 x월 x일 xxx보안서장 xxx인


바람도 아니 부는데
너는 왜 떠느냐 백양나무야.
그래 너는 분명 알고 있구나.
때가 되면 억지로라도 떨어야 함을
밑 둥 잘려 쓰러지면서도 그 떨림을 멈추지 말아야 함을.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니다
알기에, 이제는 알았기 때문에 더더욱 이러는 것이다.
백양나무야
쾅, 쾅
두 주먹 터져 나가라 떨고 있는 네 몸 두드려 대는 이 맘
끝내 닥쳐 온 이 비극 앞에서 어쩌면 좋으랴
으흐흑,,, 진호 비분으로 몸부림친다.

이죽거리며 다가서는 또한 사나이
허, 왜 이러나? 분이 때문에?!
-그래 용태 넌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
뭘? 사형이야 응당한 것 아닌가? 응징의 보복이지.
이 시대 사람이면 다칠 것을 다쳐야지
포고문 뒤엔 죄가 있건 없건 총소리가 따른다는 것쯤은 알아야잖나?
미련하기란, 제 발로 미끼가 되다니.
-그럼 넌 그때 분이가 잡히면 총살 될 걸 알면서도 그리도 냉정히 잡아 들였던 거야?
그게 내 공로지. 입대 전에 바치는 공로치군 좀 큼직한 것이 되어야잖을까.

윽,
어이 참을 수 있으랴.
야수 괴한. 악마 무슨 말로 단죄할 수 있을까.
피가 튄다.
살이 떨린다.
진호의 돌주먹 악당의 면상을 짓 조긴다.
튀어 오른 핏방울 유혈이 되어
새로 입은 그의 군복 적셔도
이미 피에 절을 대로 절은 것 아니던가?

아니, 아니, 아니. 절은 것이 아니었다.
그 군복.
그 군복 자체가 피였다.
피로 제조한 옷 아닌 옷이었다.

우르릉.
또다시 우뢰가 운다.
별빛 총총한 밤하늘에 때 아닌 뇌성이 운다.
그 별빛아래
갈팡질팡 헤매는 진호
터져 오르는 가슴
뉘라서 쓸어 줄 것이냐.
영롱한 그 별빛
순간에 덮어 버리는 칠흙의 어둠
뉘라서 걷어 낼 수 있느냐.

터벌, 터벌
발에 닿는 모든 것이
정녕 낯설어 보인다.
나서 자란 고향이건만
타향에 묻은 시체처럼
영혼은 깃을 찾아 헤매노니

정처 없는 발길은
어느덧 분이의 숨결어린 집에 이르고
무덤 속 마냥 괴괴한 정적에 묻힌 낡은 벽돌집
섬뜩한 느낌에 몸서리를 치며
진호 와락 문을 열어젖힌다.

날은 벌써 밝아왔건만
철이는 보이지 않고
죽은 듯 누운 쌍둥이 자매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기척이 없고
쥐들만이 살판 난 듯 방안을 맴돌이치는데
기겁한 진호 두 애를 잡아 일으켰다.

맥 풀린 눈.
파리한 얼굴빛.
죽음은 이미 영혼 속에 깊숙이 묻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데
순이야, 영이야.
애타는 부르짖음 들었는지 말았는지

이러단 너희들을 죽이겠다.

얼마 전 끝내 숨을 거둔 아빠의 숨소리 아직도 쟁쟁한데
너희들마저 죽인다면
안 돼, 안 돼
진호 정신없이 뛰어 나온다.

김 서린 주방,
구수한 밥 냄새.
아, 아, 아
이것이 정녕 생명의 젖 줄기더냐.
이 냄새 못 맡아 그리도 소중한 생명을 저버린
이 땅의 수백만 인명들
눈 감으며 눈 감으며 과연 그 무엇을 생각하고 절규했으랴.

사감 어머니 밥 좀.
-여긴 어른들 취사실인데 자네가 어인 일루?
알아요. 사연인즉,,,,,,,
-알았네. 여기 묵은 밥 좀 있으니 가져가게
밥을 싸 주시며 푸념처럼 외우시는 말씀
-어이구, 어른들 한 끼 식사만 줄여도 애들 수십 명은 살릴 수 있으련만
누가 안 보게 조심히 나가라구.

밥으로 쑨 죽 한 공기 넘기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영이와 순이.
언제 그랬냐 싶게 해해 웃으며 진호의 목을 사뿐히 그러않는 사랑스런 아이들.
진호 밥보자기 싸며 애들을 타이른다.
-여기 죽 많으니 어디 가지 말고 있어라 나, 오빠 찾아보고 올테니.
오빠 산에 갔을 거예요 부채마 캐러
-부채마?
응, 그걸 캐면 일대 일로 밀가루 바꿔 준댔어요.
-알았다.

계속

2008년 12월 20일 이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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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통바리 ip1 2014-01-21 18:49:50
    제가 지금 글을 보며 탈북전 북한에 있는 줄 알았어요. 우리가 겪었던 이야기들입니다. 저도 불러도 의식을 잃어가는 애들을 죽일까봐 밤중에도 코에 귀를 대며 얼마나 떨었는지 모릅니다.
    북한을 떠난지 10년이 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만하면 너무 두렵고 떨립니다. 아마 죽어도 잊힐것 같지 않습니다. 자유통일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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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유내강 ip2 2015-05-31 23:53:37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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