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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문제를 호소하고 있는 아들 - 최진이
Korea, Republic o 관리자 2 8402 2008-02-12 00:52:46
"너도 네 자식을 낳아 키워봐 네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거야. 나도 결혼 전엔 많은 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했어. 비록 하나이긴 하지만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보니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어. 자식은 그런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더라고."

이 말은 내가 아들애 문제로 막다른 절망에 빠져있던 순간 동네어귀에서 마주친 탈북여성에게 느닷없이 쏟아놓았던 말이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 깨달은 것이긴 하지만 나는 그때 아들의 문제는 엄마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진단 내리고 있었던 셈이었다. 친구와 헤어져서 집으로 들어서는데 조금 전에 한 말이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맴돌며 '어떻게 그런 말 입으로 내었어?' 하는 의문이 집요하게 나를 파고들었다. 바로 어제 까지만 해도 아들에 대해 완전 자포자기상태에 이르러 북한에서 아이를 업어내 온 행동이 과연 옳았는가. 최종 점검까지 해보았던 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당시 아들애의 산만성과 무책임성은 이미 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글씨는 엉망이지, 책은 되는 대로 흩어 넘기고 학교는 지각해도 꿈만하지, 숙제는 매일 물어봐도 없다고 하지, 노트정리는 도무지 안 되는데다 집에 와서는 가방을 되는 대로 집어던지며 딱 30분 놀고 온다 하고서는 쏜살 같이 달려 나가 밤 11시 12시나 되서야 들어오지, 만나는 친구들마저 신통치 않지‥‥매도 들어보고 욕도 해보고 설교도 해보고, 좌우간 나에게 있는 비상수단은 다 써보았으나 효력이 없었다. 훌륭한 사람은 엄마 배속에서부터 타고나는 가부라고 아들의 앞날을 포기하기도 했다. 교육자적인 자질의 사람은 따로 있는 거라고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거듭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아들애에 대해 묻는 전화가 오면 특히 아들애가 앞에 있을 땐 수화기에 대고 "잘 하고 있어요. 애가 심성이 착하고 영리해서요." 하면서 아들애의 "포장"에 최고의 극성을 다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전화를 놓고 나면 속으로 울음이 확 쏟아져 나을 것 같았다 아들애가 초등 5학년이 되도록 벌써 수 회째 맞다드는 좌절이었다. 그런데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선 이토록 '엄마 속을 썩이는 아들'에 대해 오히려 감사의 정이 싹터 오고 있었던 듯 했다.

글이 너무 비약된 듯하다. 나는 평양에서 1994년에 결혼했고 아들은 1996년 평양산원에서 낳았다. 1998년 7월, 1차 탈북 때 혼자 두만강을 건넜고 두 달 만에 북한에 다시 들어가 생부에게 맡겨두었던 아들을 찾아 업고 재 탈북 하였다. 아들애가 한국에 입국하던 1999년 겨울, 아들애는 네 번째 생일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있었다.

하나원을 나와서 아들은 동네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아들애의 문제점은 여기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별 탈 없이 어린이집에 잘 다니던 아기가 6개월쯤 지나자 고통을 호소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 친구들이 나 하고 안 놀아 줘," "엄마, 친구들이 나 싫대", "엄마, 선생님이 나 욕해"

이것은 아들애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서 "엄마 나 머리 염색해 줘, 친구도 염색하고 왔어." "엄마 우리 집은 승용차 왜 없어? 승용차 우리도 사자" 하던 말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랐다. 설득이나 타이름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눈물이 그렁한 아들애의 호소는 이틀, 삼일‥‥ 계속되었다. 철부지의 말이라 못들은 척 하기엔 그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다. 무엇이 원인일까?

얼마 전 교회에서 계룡산에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부부 동반한 교인들이 자녀들도 거느리고 왔었다. 주일 예배 갈 때마다 낯 익혀 온지라 아이들은 곧 어울려 버렸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애들은 저들의 놀음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내 아기도 그러기는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식사하려 들어갔을 때 애들은 저들끼리 큰 상 하나를 차지해 버렸다. 내 아들은 그중 어린 편에 속했다. 혹시 이런 저런 원인으로 친구들 속에 위축되진 않을 가 몰래 주시했으나 다행히도 그렇진 않았다. 그들 속에서 오히려 제일 명랑하고 활발했다. 집에서 같으면 몇 차례 꾸중을 듣고서야 간신히 먹을 수 있었던 공기의 밥을 그날은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무엇이든 형님, 누나들과 경쟁이였다.

식사 끝난 후 아들애가 도를 넘기 시작했다. 가만 앉아있는 형님, 누나들을 돌아가며 건드려 자기 놀음에 휘말려 들게 하려 들었다. 애들은 드러내놓고 시끄러워 했다. "내가 너에게 시달림 받아야 할 이유가 뭔데?" 한참 열이 오른 아들애는 그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신나 하고 그저 퐁퐁 날뛰었다.

나는 아기에게 엄한 눈짓을 해 보였다. 사람들 많은 곳인지라 더 이상의 방법을 쓸 수가 없어 아기를 그들 속에서 분리시켰다 몇 초도 안 가 내 손을 바람처럼 빠져나간 아들애는 친구들을 또 건드리고 치근거리며 저만치 달려가 버렸다.

그 찰나에 이화여대 심리학과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여성 교인 한명이 내게 다가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들애가 지금 정서적으로 불안해하는 듯이 보인다고 귀띔해 주었다. 되도록이면 아기와 함께 있는 시간을 오래 가지면서 아기를 잘 다독여 주는 것이 방법이라는 말도 보태주었다.

정서적 불안이라? 나는 마치 정곡을 찔 리운 듯 가슴이 섬 짓 해졌다. 그의 말이 옳아 보였다. 어른들도 이겨내기 힘겨웠던 도강, 방황, 은거, 한국입국의 그 험한 고비들을 아들애는 엄마와 함께 또는 엄마와 떨어져 겪었다. 겨우 세 살 나는 아들애가 전쟁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2~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부딪쳐 오자니 정서에 무리가 온 것은 당연했다.

평양에서 청진에 방금 추방 되어 온 초기만 해도 내 아들애의 심성은 맑고 연했다. 어떤 아는 집에 들렀을 때 주인집 할머니는 자기 손자와 동갑인 내 아들애를 보더니 "어디 싸움 해봐라, 누가 이기나 보자!"하며 손자 애와 마주 앉혀놓았다. 기분이 별로 안 좋았으나 그런 대로 지켜보았다. 아들애는 주인집 할머니의 말을 무서운 표정을 지으라는 뜻으로 이해한 듯 했다. 양손을 들어 두 눈과 입 양끝에 꾹 대고 힘껏 늘이더니 "으응!"하고 소리 질렀다. 호랑이 흉내였다. 주인집 손자아이는 열 손가락을 고양이 발처럼 오므리더니 확 달려들며 상대의 얼굴을 허벼드는 것이었다. 내 아들애는 당장 기겁하여 "으앙!"하고 울음 터치며 엄마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 가? 그렇다고 유치원을 옳길 수도 없고, 나는 평소보다 마음을 눅잦히고 아들에게 물었다.

"네가 잘 해주었는데 친구들이 싫어하던?"

아들애는 덮어놓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저희들만 장난감 가지고 놀고 난 못 가지고 놀게 해."

나는 이렇게 저렇게 아들애를 설복시켜 보았다. 친구들 앞에 으쓱해 보이라고 비싼 장난감을 사줘보기도 하였다. 아들애는 그것을 들고 갔다가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엄마, 친구들이 내 장난감 빼앗았어. 나 어린이집 가기 싫어."

아들애의 장난감도 찾을 겸 시간을 내어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만났다.

"아, 기문이요, 처음엔 안 그랬었는데 지금은 친구들과 놀다가 조금 언짢으면 말로 하지 않고 '음'하면서 주먹부터 먼저 들어요, 그래서 내가 눈짓을 하면 때리질 못하고 그냥 놓아 버려요, 여느 땐 잘 놀아요, 그리고 물건 정리하는 능력이 아직은 약해요,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낳아졌어요,"

선생님은 아이 결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엄마인 내 잘못을 지적하고 있었다. 아이가 내 말을 따라주지 앓으면 언제부터인지 덮어놓고 큰소리치고 윽박지르고 주먹을 쳐든 채 위협해대곤 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주먹으로 만사를 해결하려던 성급한 태도를 자제하는 한편 친구들과 노는 아들애의 행동을 기회가 되는 대로 주시해 보았다. 나의 아들애는 다른 애들에 비해 의사표현능력이 떨어졌다.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는 방식도 서툴렀다. 구사언어는 "좋다", "싫다"로 한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지금껏 또래 애들과 놀지 못했던 한이 일시에 폭발하면서 대부분 상대 아이에 대한 해코지로 대치되고 있었다.

신체문제 또한 말이 아니었다. 엄마의 애정을 받을 새 없이 살아온 아들애는 자리에 눕기 바쁘게 손가락을 빨아댔다. 필요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한 아이의 몸에선 쉴 새 없이 식은땀이 흘러 입었던 옷이며 자고 난 이부자리와 베개를 화락하니 적셔놓곤 하였다. 그런데도 집을 받아 살림을 시작한 나는 이 점에 주의 돌리지 못했다. 아이를 위해 돌리는 시간이 아까워 항상 초조하고 다급하게 아이를 몰아대온 것이었다.

나는 먼저 아이 영양보충에 힘쓰는 한편 저녁시간을 뚝 떼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자전거도 함께 타주었다. 공원에 나가 그네를 태워주고 친구들을 집에 초청하게도 하였다. 동시에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온갖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대화로 해결하되 내가 잘못했을 때는 아이에게 솔직히 사과를 했다. 잠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끝없이 아이를 다독여 주었다. 확실히 아이는 달라지는 듯했다.

서울에 이사 와서 유치원을 거의 졸업할 무렵 아이는 또 빗나가기 시작했다. 피아노 배우겠다기에 학원에 넣어주었더니 학원은 아랑곳없이 친구들과의 놀이에 날마다 목숨을 거는 것이었다. 마침 한국 심리학 대모인 충북대의 한 교수님의 어머니를 소개받아 주말마다 놀이심리치료 받으려 다녔다. 처음 갈 때는 전철의 그 붐비는 속을 물고기처럼 누비며 돌아치던 아이가 치료 끝날 무렵에는 제 자리에 제법 진중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였다.

초등 2학년에 올라오자 부턴 자기를 계속 때리는 애들이 있다며 학교에 데려다 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아침에는 학교에 함께 가주고 공부가 끝날 무렵쯤이면 학교 정원에 앉아 있다가 아들애 손목을 쥐고 돌아왔다. 이 과정에 아들애는 자기를 때린 몇 아이들을 고발했고 나는 그 애들과 아들애를 서로 맞세워 시시비비를 가려주었다. 아들애가 친구에게 돈 300원을 꾸고 안 갚은 것이 원인인 적도 있었고, 상급학년 남학생이 아들애를 협박해 돈을 갈취해 내려던 경우도 있었다.

그 모든 애들에게 친구와 왜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한편 전번 현상이 반복될 경우 가해질 책임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해두었다. 20일쯤 지나니까 이제는 엄마가 따라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아들애가 초등 5학년에 이르도록 엄마로써 아들에게 취해온 교양방법을 살펴보니 변해온 것과 변하지 않아온 것이 있었다. 불변한 것은 한국의 교육 실태를 살펴보면서 세워진 나의 교육관이었다.

첫째로, 아들애에게 탈북자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도록 한 것이었다. 내가 아들애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낼 때 원장선생에게 당부했던 말은 "한국아이들과 똑같이 대해주세요."였다. '탈북자'라는 명목 하에 값싼 동정을 아들애가 받는 것이 싫었고 '탈북자'라는 명분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두려워하지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둘째로, 독서력 향상과 매일 일기 쓰기가 최고의 공부라는 사실을 아들애에게 시종일관하게 강조해온 것이었다. 아들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주위의 권고로 수학 학습지를 시켜본 일이 있었다. 학교 진도보다 속도가 빠르게 되자 아들애가 턱없이 우쭐해졌다. 나는 수학 학습지를 단호히 끊어버렸다. 학원 공부 할 시간이면 책을 읽든가 친구들과 놀게 했다.

셋째로, 용돈 몇 푼으로 자식의 선심을 사려는 안일한 행동을 철저히 경계해 왔다. 한때 한국사회의 선풍을 일으켰던 어린이 용돈문화에 대해 나는 완전히 다른 입장을 취했다. 처음 몇 번 실험해보다가 그 독성을 깨닫고 용돈을 일절 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 대신 아들애의 통장엔 한 달에 2만원씩 꼭꼭 저축 해주었다. 어린이에게 있어 최고의 금전교육인 돈이 얼마나 힘들게 벌어지는 가를 우선 깨닫게 하려는데 있었다.

아들애에 대해서 시시각각으로 변해온 것이 집에서의 공부 방법 이었다. 초기엔 엄마의 계획을 아들애에게 주입시키는 식이었다. 아들애가 신체적인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번엔 엄마와 함께 하는 방법을 취했다. 아들애가 공부를 스스로 하려 하지 않았다. 마침 아들애에게 새 아빠가 생기면서는 애가 혼자서 하는 방법으로 이전하였다.

이 마지막 방법은 엄마의 막대한 인내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들애는 초기엔 갈팡질팡 했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바대로 정말 모든 게 엉망이었다. 아들애만 보면 심장이 활랑 거릴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학부모 사이트에도 들어가 보고 어린이 관련 전문서적도 읽고 남편과 수시로 상의해가며 아들애에게 맞는 방법을 꾸준히 추구해나갔다.

이 과정에 엄마인 내 자녀교육관의 중요한 맹점을 깨닫게 되었는데 북한에서 전횡하는 독재적 사고에 내 머리 속이 시꺼멓게 중독되어 일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들애의 지금까지의 방황은 엄마의 독재적 교육관에 대한 필사적인 몸부림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자신의 교육관을 민주주의적인 방법으로 고쳐나갔다. 사소한 것이라도 아들애의 의사를 물으려고 노력하였다. 아들애가 언제 그랬더냐 싶게 부드러우면서도 의욕적인 정말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는 고백이 절로 튀어나을 지경이었다.

아들애는 이제 또 어떤 식으로 엄마의 문제를 호소해올 지 모른다. 그 호소에 대비하기 위해 아들애의 스치는 듯 한 한마디에도 심혈을 다해 귀 기울여가고 있다.

아들의 씩씩하고 밝은 내일을 꿈꾸며...

2006년 10월 최진이

자료제공 : 북한이탈주민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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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고담녹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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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내세요 2008-02-12 04:24:14
    힘내세요.제가봐도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배우고 따라하기 마련인데 아이부모님이 굉장히 노력하신 것같아요. 부모님이 자신의 잘못을 아시고 개선하시려는것 만으로도 아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데 굉장히 큰 영향이 될것에요.저도 살아가면서 배우고 느낀건데 아이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려면 나자신을 부모형으로 바꾸고 저도 공부해서 아이를 가르쳐야겠다라는 생각이들더라구요.저희엄마아빠가 저를 잘못키우신건 아니지만 가정교육이 굉장히 큰 영향이고 변화를 시킬 수 있는 부분이라 저도 애낳으면 태교부터 제가 부모님께 받았던 교육말고 완전 다르게 공부를 하고 아이에게 전해줘야겠다라는 필요성과 계획이 생기더라구요.
    글쓰신분 잘생각하신것에요.예전에 방송에서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폭력적인 자식이 나오기 쉽고,자식이 커서 예를들어 아버지가 바람둥이였다라거나, 어머니를 자주 패는 것을알고 아버지를 증오하지만 자식도 대부분 아버지 닮아가더라구요.않그런 사람은 굉장히 자제를 하고 무한한 노력을하는사람이라고 들었어요.그만큼 환경이중요하고 자식교육이 중요한 것같아요.진이님 말썽 않피우는 자식 키우는 것도 힘든데 더힘드시겠지만 님의글을 보니 아이가 올바르게 자랄 희망이 보입니다.^^;여자의 힘은약해도 어머니의 힘은 부모님의 힘은 정말 대단하셔요. 그리고 제가 어제 품바라는 방송을 보았는데 아버지가 거지옷입고 거의 손님에게 구걸하시는 식으로 돈을 버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않고 당당하게 아버지라고 자랑하고,하교후엔 아버지 일까지돕더라구요. 보고 놀랐고 나라면 아버지라는것을 부끄러워 했을텐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람을 비교할 수가없지만 정말 거지라고 놀림받기 딱 쉬운 품바보다 더좋은 위치에 있는 세글자 탈북자라는 이름 굳이 감출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숨길 필요 전혀 없다고 생각을 바꿨답니다.
    이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남들보다 우리는 더 소중한 목숨이라고 가르치면,,남들이 겪지않는 고통을우리는 이미 겪어서 다음 고비ㅏ와도무서울게 없는 없어서는않될 철인 우리는 정의를 지키는 로보트 태권브이리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하고자신감을 심어주면 제가 그 주변에 맴도는 친구여도 놀릴 틈이 않보이겠더라구요

    진이 어머님 늘 힘내시고, 아이 정말 바르게 잘 클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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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수 2008-02-12 19:05:34
    최진이씨 글을 읽으면 언제나 진실되고 어떤 이데올로기에 편향되지않은 좋은글이라는것을 느낍니다. 좋은것은 좋은것이고 나쁜것은 나쁘다고 말할뿐 어떤 이데올로기에 좋은것과 나쁜것을 바꾸어버리는 이곳 새터민 사이트에서 참으로 유익한 말씀입다.
    저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으로써 혹은 다른 모든 학부형들에게도 최진이씨같은 고민과 심적인 고통을 느끼지 않은다면 이상하겟지요.
    하나 우려스런것은 아들에게 새터민이라고 당당히 밝히라는것인데요.그건 좀 아니다십습니다.최진이씨가 밝힌것은 좋으나 아들에게는 오히려 당당한 대한민국 어린이로써 자신있게 행동하라고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 잘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최진이님의 좋은 글 다시 기달리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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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내세요 2008-02-13 01:11:57
    봉수님 저는 탈북인이 아니여서 심정 백번 헤아리지 못하고, 주제넘은 간섭으로 보여질 수도있겠지만 탈북자라고 당당히 밝힌 게아니라는 생각은 정체성을 숨기라는 의미도 되서 부모는 참을 수있는 인내심이 있지만아이들은 사춘기때 정체성 혼란으로 삐툴어질 수있는 요소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교육은 부모님이어떻게 교육시키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사고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으로 따라 갈수 있는데 이 두부류가 장단점을 갖고있습니다만 기왕이면 긍정적으로 가면 좋지 아니 하겠어요?

    그리고 아이에게 여기저기 홍보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고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알려야할때는자연스럽게알릴 수도있고, 이때 긍정적인 면을많이끌어내면 친구들이 왕따를 시킬래야 시킬수가없고 당연한 현상중 하나로받아들여진답니다. 같은 상황 이라고 할 수 없지만 고등학교때 몸이 불편한애가 우리반에있었거든요.성격도 내성격이라 거의 왕따이고 애들이 간혹 놀리기도 했는데 3학년때 걔가 성격을 활달하게 바꾸더라구요. 지금은 친한친구가 되었는데 편견 않들구요.

    모르는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때마다 저희 또 고딩모임이 있거든요.고딩 모임때는 칭구자존심않상하게 복수해준답니다.

    그리고 부족한 점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우리들이 채워주는데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친구 성격이 쾌활하고 당당한 자신감이 있어서요.

    어릴때는 저도 같이 놀리고 막피해다녔는데 지금은 편견 전혀 없구요.소개팅도 몇번 시켜주고 그랬어요. 저는 많이 살지 않았지만 남들은 기형아낳으면 낙태시킨다던데 전 나중에기형아를 낳게된다고하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키울 방법을 알기때문에 개인적으로 제 성격,저의 나쁜 습성 않닮게 해주고, 기왕이면 삐툴어지게 방관하지 않게 키울려구요.대신 나를 버리고,부모답게 아동심리학책등 관련 책을 계속 읽고 전문가의 조언도 수시로 듣고 아이교육에 대한 세미나있으면 수시로 참여해서 도움받아야 하는 내간을 포기해야하는 기회비용을 감수해야겠지만..

    봉수님제가 이야기 샛길로 새버렸지만 탈북자는 장애우와 절대비교불가한 신체 건강한 사람이고, 대한민국인인 동시에 부끄럽지 않는 결코 부끄러워햇도 않돼는 탈북자입니다.

    예전엔 이말을 할 생각을 미쳐 몰랐는데 휴먼다큐멘터리를 보고, 어리지만 살아보고세상을 겪어보고 책을 이것저것 읽어보니 인위적인 당당함이아닌 자연스러운 당당함이 자산이 될수도있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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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d 2008-02-13 01:31:43
    그리고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전 여기서 글읽고 님들한테 배운점이 많아요..제가 몇몇 탈북자분들한테는 질타도 하는 편이지만 이민복님이 쓰신 글 읽으면 남한에서 태어난 것들도 저렇게 반성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하고저도 공개는 못하지만 반성일기 작성하고,이외 님들 보고 보고 배워야할점은 막 배우고있답니다. 여기서는 조언을 했지만 나중에는 고맙습니다라는 내용을 들고 올게요.^^; 본인은 모르시지요? 눈살 찌뿌리는 글 댓글도 솔직히 많지만 동시에 님들한테 보고 배워야 할점은 더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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