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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젠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 김성철
Korea, Republic o 관리자 8 16291 2008-02-14 07:24:38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23살에 고향 떠나 두만강을 건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10년 전 급성세균성대장염 때문에 죽음의 문전을 두드리며 두만강을 넘었던 내가 이렇게 살아서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것도 꿈만 같을 뿐이다.

1975년 함경남도 함흥시 00구역 000동의 평범한 가정에서 1남2녀중 외아들로 태어난 나는 황철나무 우거지고 해바라기 만발한 학교에서 11년 고등교육을 받으며 꿈 많던 학창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에 시작된 '고난의 행군'은 나의 모든 꿈을 앗아갔고, 23살의 젊은 나의 발걸음은 고향이 아닌 중국으로 향하게 했다. 산 설고 물 설은 낯선 땅 중국에서의 고단했던 4년은 후일 한국에서의 생활에 귀중한 경험이 되였다.

나는 2001년 1월 김포공항으로 입국하여 모든 조사를 마친 후 하나원에서 3개월의 사회정착교육을 마치고 그해 6월에 서울시 강서구 00아파트에 아내와 함께 삶의 둥지를 꾸렸다.

첫 직장

우리 부부는 하나원 퇴소 10일 만에 각각 직장을 얻어 취직을 했다. 집사람은 00회집에, 나는 유일기기산업사라는 경찰장비전문제조업체에 취업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리주위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보게 되었다. 또 그들의 세금으로 나와 같은 젊은 사람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열심히 일한 덕에 옆 건물 사장님께서 직접 찾아와 나에게 아내를 사원으로 받고 싶다고 청을 하기에 아내를 대신 GMD라는 유통회사 정식사원으로 취업시키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2001년 11월부터 급여의 50%를 지원해주는 통일부지원금을 받아 각각 140만원의 수입을 올리면서 월 50만 원짜리 근로자우대저축 3개를 들었다.

통장 한 개에 50만원씩 3년을 저축하면 3년 후 2천만 원을 받는 것이다. 연리로 따져보니 5.2% 였는데 이런 통장을 나와 집사람의 명의로 3개를 만들었다. 3년 후에 6천만 원을 만지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앞으로 저금리시대가 되면 연리 5.2%에 세금면제까지 받는 저축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고 우리 부부의 그 선택은 대단히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고민

세금공제 후 월 260만원의 소득을 올리던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2년 동안 약정 지급 되던 급여의 50% 지원 통일부지원금이 2003년 11월자로 끊어지게 된 것이다. 나는 10만원 인상된 150만원을 받는데 아내는 100만원으로 내려간 월급을 받게 되었다. 각종 보험과 물가 상승으로 지출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오히려 20만원 가까이 줄어들어 240만원을 오르내리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월 150만원 저축, 두 사람 보험 월 30만원을 쏟아 넣고나면 오히려 우리 정착금을 써야 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동안 우리 부부가 받은 정착지원금 4400만원 (세대주:3600만원, 가족:800만원)으로 바쁜 데를 메우면서 살아왔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나는 2004년 1월 나는 최종적으로 직장을 옮길 생각을 굳혔다. 5년간 1억 저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내가 월급을 더 받는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다니던 지금 회사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2년여 근무하면서 수입검사 대리로 승진했고, 직장상사와 부하들과의 원만한 대인관계로 근무환경은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도전을 선택했고 편안함을 단호히 버렸다. 많은 주변사람들이 나의 선택을 나무랐으며 나를 회사에 소개시켜주신 형사님은 자기의 의견을 무시했다고 다음직장은 "네가 알아서 잘 해보라며" 사실상 단교에 가까운 화를 내시며 이직을 결심한 나를 안타깝게 하였다.

취업과 돈벌이는 탈북보다 힘들었다. 나는 결심대로 유일기기산업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직장 취업에 나섰다.

사실 이때 나는 마음의 고생을 제일 맡이 했다. 집에서 쉬는 한 달간 집사람 보기도 부끄럽고 내가 괜히 욕심을 부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취업의 벽은 예상을 뛰어넘어 냉혹하고 이러다 월 150만원은 고사하고 100만 원짜리 직장도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에 뭘 먹어도 먹는 것 같지가 않고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았다. 힘들게 일하는 집사람이 오히려 나를 위안해 주는 게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유창한 중국어 실력과 2년간의 직장경력이면 웬만한 곳은 충분히 취업가능하다고 판단한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나 같은 탈북자가 넘기에는 한국 사회의 편견이 너무나 높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1백통이상 작성하여 우편으로 보내고 메일로 보내도 답장 한 장 없었다.

그 이유를 알 수가 얼어 고민하던 끝에 특단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서 탈북자의 흔적을 없애고 순수 한국사람 경력으로 위조를 해서 보내기로 했다.

나의 방법은 적중했다. 즉시 여러 곳에서 답장이 오고 면접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한다. 진정한 남북교류가 이뤄지고,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을 하려면 남한 사람들과 북한사람들 간의 불신과 편견이 우선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곳에 오는 탈북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취업에 실패하고 방황하며 이 사회에서 이단자처럼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는 마약과 강도, 도적질을 하는 비도덕적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가지고 전체 탈북자들을 매도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북한인민들은 반세기 이상 세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독재통치를 받으며 폐쇄된 사회에서 살았다. 물론 그 땅에도 사람은 살았으며 나의 조상과 부모형제들이 대대손손 살았다. 단지 사상과 이념, 문화와 가치관이 다를 뿐 똑 같은 한 민족이다. 그들에게는 사랑과 용서가 필요하다.

한국은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물질문명을 누리며 정신적인 문화와 삶의 질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모르고 살았다. 아니 무관심속에 살았다. 그들에게 남에 대한 배려는 사치고 사랑은 욕심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내면에는 감정이 넘치고 사랑이 샘솟는 대한민국의 똑 같은 사람들이며 우리의 형제자매들인 것이다. 그들에겐 편견이 아닌 진정한 사랑과 인정이 필요하며 용서와 너그러움이 그리울 뿐이다.

국민소득 2만 불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북한사람들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세상 어느 민족이 저 북한인민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한국에 온지 3년이 넘어서도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혹시 모를 편견과 몰이해로 받게 될 불이익과 그로부터 받게 될 내 맘의 상처가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취업하면서 받은 탈북자에 대한 남한사회의 편견을 확신하게 되면서 허탈감까지 느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언젠가 실력으로 여기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을 때 탈북자라는 나의 신분을 떳떳이 밝히고 살겠다고 굳은 맹세를 했다.

나는 탈북자라는 나의 신분을 감추고 네덜란드 계 INALFA KOREA 라는 다국적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고 1차 면접을 통과하였다. 하지만 2차 면접에서 생산팀 팀장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끝내는 탈북자라는 신분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탈북자라는 신분을 감춘 이유를 설명해보라는 팀장님에게 나는 내가 한국사회에서 겪었던, 그래서 내가 숨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2002년 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르던 6월 29일 북한의 도발로 일어난 서해교전이 발생한 후, 직장 동료들한테서 받았던 오해와 취업에 도전하면서 확인했던 편견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어느 회사나 수습기간이 있는데 그 기간동안 써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저 스스로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나의 말이 팀장님을 움직인 것 같다. 이후 나는 사장님과 임원들까지 3차례의 최종면접에서 통과 되였으며 한국의 젊은이들이 괌의 직장이라는 외국계 다국적 회사에 정식사원으로 채용되었다.

나는 40:1의 경쟁력을 뚫고 창사 10년간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대우인 연봉 2400만원에 생산팀으로 발령받아 2004년 3월 2일로 첫 출근을 하였다. 함께 입사한 4년제 대졸자들의 연봉 2100만원에 비교하면 실로 파격적이라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냈다.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나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했으며 상사가 원하는 요구 수준에 맞추기 위하여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였다. 300여명의 직원들 앞에서 내가 북한의 전체 인민들을 대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매사에 심중하게 모든 일들을 솔선수범하였다. 2004년 5월 KBS '남북의 창'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나는 직장이 경기도 화성에 소재하는 관계로 2004년 6월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하게 되였다. 그동안 정이 들었던 서울의 임대아파트를 정부에 반환하고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20만 원짜리 18평 빌라에서 1년간 거주하다가 2005년 꿈에 그리던 내 집을 마련하였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청구1차 아파트 단지 내에 내 집에 뻐젓이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리 부부의 4년여 피타는 노력의 결실로 시가 1억 2천만 원짜리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부러운 것이 없다. 월 2백만 원의 출장비를 받아가며 해외 장기출장도 간다. 그 덕에 주말이면 동경, 오사카, 교토를 실컷 구경했고 국제적인 감각도 넓혔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언어와 행동, 생각까지 모든 것이 바꿔 지금 나는 탈북자라고 당당히 밝힌다. 놀랍게도 지금은 나를 전혀 탈북자로 여기질 않는다.

나는 지금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나마 직장생활을 많이 한 선배로서 꼭 후배 탈북자들에게 조언하라면 이렇게 당부하고 싶다.

첫째. 말(언어)을 바꿔라.
언어는 당신이 이 나라에서 당당해 질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둘째. 항상 웃고 매너를 지켜라.
밝은 웃음과 성숙한 매너는 당신을 당당하게 만들며, 뭇사람들이 당신을 깔보지 못하고 존중하게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이다.

셋째.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가지고 수풀처럼 자신을 낮추어라.
자기를 들어 낮추는 겸손은 남들이 당신을 들어 높이는 첫 번째 조건이다.

넷째. 매사에 심중하라.
자그마한 일에 쉽게 감정을 표출시키며 이깟 일 아니면 딴 회사 없겠냐는 식의 행동은 자신을 영원히 취업준비자로 만든다.

다섯째. 항상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라.
지금 이 시각에도 고향에서 굶주릴 나의 부모형제들을 생각하면 무엇인들 못 참겠는가! 참고로 나도 가장 분하고 억울하여 당장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싶었을 때 고향의 부모형제들을 생각했다. 나의 일당(5~10만원)이면 북한의 가족들의 한달 생계라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당신의 생각은 달라 질것이다.

나는 위에 지적 사항을 지키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리고 99%이상 지켜왔기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

지금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떳떳이 말하고 있다. 나는 월급여의 l0%인 평균 25만원을 각종 세금 및 연금, 보험으로 나라에 납부하고 있다.

나는 월 40만원의 휘발유를 소모하며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또 각종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차량보유세 등 각종 세금을 이 나라에 납부하고 있다.

나는 말로만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전,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지키는 지극히 평범한 이 나라의 국민이 먼저 되었다. 그리고 납세의 보람을 느끼며 내 주위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또 도우려고 애쓰며 당당해졌다.(사실 어떤 때는 월급명세서에서 50만원이나 공제된 세금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2006년 10월 김성철 후원회 정착수기에 응모하면서

자료제공 : 북한이탈주민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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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해사랑 2008-02-14 09:34:48
    김성철님의 수기를 보면서 잠깐 주저하던 내 마음에 힘을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올해도 가정과 회사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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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인 2008-02-14 11:27:43
    참으로 말씀하신 5가지를 우선 실천하면 반드시 성과가 있겠습니다.
    좋은 경험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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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2008-02-14 13:17:53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도 좋인일 많이 생기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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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울 2008-02-14 13:46:23
    너무나도 힘이되는 글입니다.

    열심히 사시는 김성철님의 당당함이 부럽습니다.
    좋은글 마니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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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장미 2008-02-15 12:23:15
    당신의 성공을 축하합니다.
    오직 앞만 바라보고 열심이 달려온 당신, 우리 탈북자들의 영원한 모범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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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꼴꼴도야지 2008-02-15 13:39:42
    스스로 성공의 길로 채찔질하며 달려 온 님의 모습 정말로 보기 좋네요.
    우리 탈북자들의 따라배워야 할 삶의 본보기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발전된 모습이 담긴 님의 글을 읽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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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춘복 2008-02-16 18:11:51
    안녕하세요 저는 함경남도 함흥시 성천강구역 하신흥동x반에서태여나서생각지않케 1997년1월 중국선을넘어서머물다가 2004년인천공항으로 입국하여정착하여살다가2007년5월한국인과 일생에 한번밖에없는백년가를약속하여결혼하여재미나는가정을 꾸리고있지만 김성철님의수기를 감정깊게읽고 고생끝에성공을 한것같네요.참같은함흥사람이라 반갑네요 앞으로 좋은수기많이올려주세요.저는 현재경기도 안산에서 살고있네요.두 부부가 열심히사는 모습대견스럽네요. 저를 비릇한탈북자들을 위하여 많은글과 수기를 올려주세요.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가정의 행복과 사회생활의 커다란진급을 위하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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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희 2008-02-22 13:44:39
    이글은 선희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8-02-22 13: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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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란 2008-02-25 21:00:12
    정말 좋은 글남겼어요 .저역시 함흥인데 같은고향사람인게 자랑스러워요 .이렇게 열심히사신 댁님의수기보면서..저도 삶의가장힘겨울적마다 두고온 고향의 형제그리며 님이올린이수기 바탕으로 내인생 열심히멈추지않고 살아가렵니다 ..항상 웃으며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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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ㅡㅇㄹㅇㄴㄹ 2008-03-28 02:08:28
    개한민국 개한민국 개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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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베르 2008-06-16 22:50:14
    북에서 오신 분들이 역시 생활력이 강하시군요...6.25때 월남해 오신 분들도 다들 잘 사시는데...지금의 탈북자분들도 조만간 다들 성공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남한에 살고 있는 저도 김성철님이 부럽습니다..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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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자이지요 2008-10-07 07:22:54
    글잘읽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열심히 한만큼 보답을 해드립니다.
    항상 열심히 사시는 모습.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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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kdtjrwls 2008-10-07 11:00:24
    애쓰고 노력하면 될수있다는 자부심을 안겨주는 글참잘읽었습니다
    회사일을하시면서 집을마련하셨다니 내형제가 집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가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더큰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사시느라면 더 큰복이올것으로 믿어집니다 건강과 행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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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화원 2008-12-03 23:14:50
    저랑 같은 나이의 가장이시군요. 한국에서 태어나 너무 어려움 없이 지내온 제가 부끄럽네요.
    앞으로 더욱 가정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수기 내용 중에 개인 정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수정하시는 게 조금 어떨까? 하는 기우가 드는 군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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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쓰 2009-07-08 21:59:57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하시고 계시네요..
    저도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선배님을 본받아 사회생활열심히 하면서 떳떳한 대한민국의 한사람으로써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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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웅 2009-08-19 02:36:14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 ! 긍정적마인드 참 중요한거죠 ~
    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 이 자유가...소중한것이란것을 까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자기자신에게 핑계만 대고 저라는 브랜드를 성장시키지 못하고 있네요.
    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열심히 일하셔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분들 꼭 한국으로 대리고 오셨음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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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 2010-05-05 23:11:16
    우수한 탈북자분들은 많이 올수록 남한에서는 취업이 힘들겠군요

    여러모로 문제가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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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anilla 2010-08-01 13:10:56
    월 40만원의 휘발유라면 대단한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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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jl ip1 2010-12-10 23:52:40
    정신력이 대단하군요
    어떤 어려움도 무난히 해결하겠네요
    그 힘은 고생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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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민이 ip2 2011-08-18 00:05:58
    아따 부끄럽구만요.. ㅎㅎ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나름 좋은 대학나오고 군대도 다녀와서 좋은 직장 취업했는데... 결혼도 귀찮고 다 귀찮아서 때려 치고 집에서 쳐 놀고 있습니다. 쩝.. 뭐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긴 하겠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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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민이 ip2 2011-08-18 00:09:59
    80년대 미국을 앞지르고 세계최강이 된다던 일본이 몰락하기 시작한게 바로 80년대부터 일본 청년들의 의욕상실이 시작됬기 때문입니다. 하류사회란 느낌이죠. 너무나 물질적으론 풍요로우나 결정되어 있는 코스를 밟아야 하는 사회에 일본 청년들이 싫증을 느끼며 국가에 상승 모멘텀이 심각하게 상실된것이고,특히 2011 년 현재 일본의 청년들은 엄청납니다. ㅎㅎ 한달 벌고 한달 놀아서 돈다쓰고.. 저희 아버지가 70년대 일본에 사업차 많이 가셨는데 그때 일본 젊은애들은 진짜 무서웠다고 하더라구요 눈이 초롱초롱 하고 세계를 제패 하겠다는 야심이 있었고.. 지금 제친구 또래인 일본애들 보면 아무 생각없이 삽니다 ㅎㅎ 이제 한국의 젊은이들도 그게 시작된것 같구요. 문제는 일본도 한국도 이젠 최고의 과학자들이 탄생하지 않기 시작했다는거죠.. 젊은이들이 고도로 산업화된 세상에서 이공계의 학문에 뜻을 두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한국이나 일본은 멸망할 겁니다. 그전에 북한이 멸망하겠지만요. 인간 세상에 영원한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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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교육 ip3 2013-03-04 22:37:04
    참으로 감동적인 수기 입니다..남한사람으로서 남한의 가장 더러운 부분을 밝히고자 합니다..우리나라 사람들 교육열이 높다고 미국대통령 오바마가 말했는데 그건 겉만보고 속은 모르는 소리 입니다...시월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강남의 주부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애들한테 학교 정규교육말고 평균적으로 10개 이상 학원에 거의다 보내더군요..애들의견은 무시하고 자신들욕심을 채울려고 말이죠 근데이게 없는집 애들도 따라 한다는게 문제 입니다...그런 엄마들 한달학원비가 500~600만원 든다고 하는데 그거보다 많이 다니는 사람도 있겟지만 돈 있는 사람이 그러는건 문제될게 없는거 같지만 능력이 안되는 부모들도 자식들 한테는 다 시키고 싶어서 빛을 내서라도 따라서 한다는게 문제죠..그러니 우리나라가 쓸데없는 고학력자사회에 실업률만 높아지고 ..자식들 능력을 모르고 무조건 누가 하니까 내 자식도 기죽이기 싫어서 시킨다 ..이런 무식한 부모들 참 문제 입니다..그렇게 한다고 하기싫어하는 애들이 공부를 잘 하는것도 아니고 공부에 흥미를 가지면 자신 스스로가 하고 싶어지고 그러다 보면 실력이 느는데 그런애들은 시킬 필요성이 있겟죠..근데 쓸데없이 많은 애들 죽이는 과외는 생각좀 해 봐야 겟습니다 애들을 만능인간으루 다 만들작정 아니시면..피아노학원 바이얼린학원 국어 영어 줄넘기 태권도 기타등등 그냥 운동은 애들 발육에 도움이 되는거니 머라고 할말은 없지만 음악 미술 같은건 애들 재능을 보고 시키시는게 좋을거 같고요..그렇게 사교욱이 경쟁적으로 불 붙다보면 어째든 못가진 사람들은 대물림으로 못살고 잘사는 사람들은 대물림 으로 잘사는 나라 부익부빈익빈이 더욱 가속화되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겁니다..왜냐하면 돈질 하는건 인맥을 형성하는 또다른 어두운 면이니까요 부유한집안 자손들은 어렷을 때부터 부유한사람들 인맥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또 그런데로 물론 어렵게 자수성가 할수도 있겟지만 아무래도 인맥은 무시 못하죠 아직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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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이살구잡다 ip4 2013-06-10 14:39:00
    한국사람으로 태어난 저보다 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상을 가지셨군요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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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에사교육 ip5 2015-10-29 21:30:35
    저는 캐나다에 살고있는 교포입니다.

    사교육님이 쓰신 글은 문제를 아주 먼 관점에서밖에 보질않아, 본질의 이해는 못하는것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사회에서 중산층 수준으로 살지못해 열등의식이 많으신것도 같습니다.

    수기는 아주 잘 읽었고, 저희 부모님 두분다 이북이 고향이시고, 남한에서 이북5도 협회 관련하여 많은 활동을 하셔서 어렸을때부터 북한과 북한동포들에 관심과 걱정 모두 많았는데, 감동적인 탈북스토리, 성공적인 남한생활 이야기를 보니 마음이 좋습니다.

    앞으로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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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청년들 김정일 생일에 '집단 동상' 걸린 사연은 - 문성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