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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통일원년
동지회 1649 2004-11-17 01:28:51
북한이 공식회의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1995년 통일설」을 제기한 것은 1988년 11월 7일
열린 중앙인민위원회·최고인민위원회의·정무원 연합회의에서였다.
북한이 이 회의에서 「포괄적 평화보장 방안」을 채택하면서 『1995년은 조국해방 50돌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며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이 해야말로 더이상 조국통일의 과제를 넘겨
서는 안될 중대한 역사의 개선으로 되어야 한다.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동포들은 구국통일의 기치밑에 굳게 단결하여 대결과 분열의 역류
를 이겨내고 힘차게 전진함으로써 조국해방 50돌을 반드시 나라의 자주적 평화통일위업을
성취하는 역사적인 전환의 해로 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북한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1989. 7. 17, 평양)이 끝난 다음날인 1989년 7월 8일
평양서 열린 「해내외동포들의 조국통일 촉진대회」에서 당비서 허담(1991. 5 사망)의 보고
를 통해 『우리는 민족의 분열을 절대로 반세기 이상 넘기지 말아야 한다.
북과 남 해외의 모든 조선동포들은 민족통일대행진을 더욱 힘차게 다그침으로써 조국해방과
민족분열 50돌이 되는 1995년이 반드시 조국통일의 역사적인 해로 되게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처럼 해방 50주년이 되는 1995년을「통일의 해」로 설정한 것은 『금세기 내에 통
일달성』이라는 점과 이른바 0,5주기로 「꺾어지는 해」를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있는 관례
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당시 해외동포와 기독교계의 일부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 구약성경에서 유래하
는 「희년」(禧年)이야기를 꺼내면서 「50주년」을 강조한 데서 연유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즉 구약성경(레위기 25장 10절)에 의하면 구약시대에는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를 「복스러운
해」, 「종도 자유롭게 빚도 탕감해 주는 해」라는 해방의 뜻으로 쓰이는 「희년」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와 관련 1989년 3월 문익환목사도 당시 평양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 남과 북의 인민
과 민중이 정말 걸맞는 주체역량을 가지게 된다면 1995년까지는 통일을 이룰 수 있지 않을
까, 최소한 이르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북한은 기회있을 때마다 신문·방송의 논평이나 각종 성명 담화 등을 통해 『1995년은
조국해방 50돌이 되는 해로 평화통일의 위업을 성취하고 겨레의 숙망을 실현하는 역사적인
전환의 해로 돼야 한다』, 『1995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장식하려는 것은 우리 겨레의 한결
같은 염원이자 확고한 의지이다』, 『지금 우리는 1995년까지 연방제 통일을 이룩할 목표를
내세우고 투쟁하고있다』등으로 1995년 통일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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