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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그는 누구인가?(2)
Korea, Republic of 관리자 2555 2014-04-07 23:36:34

2000년대 초기 나는 회령에서 중국과 무역업을 시작 했었다.


유가강을 가깝게 알게 된 동기는 핸드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과 무역업을 한다는 것은 중국의 상품 가격을 알고 물자를 내오는 날자와 시간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핸드폰이 없으면 무역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가강의 집은 중국에 친척들이 많아 중국에서 장사 물자를 내오기 위해서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와 인연을 맺은 것은 회령시에서 가장 가까웠던 친구 한 사람인 박원철(가명)의 아내 최순옥(가명)이 때문이었다.

 

2001년 봄이라고 생각된다. 하루는 박원철이 나에게 자신의 아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령시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는 중국화교가 나의 핸드폰을 사용하게 하면 전화비를 넣어 주겠다고 했다.

 

북한에서 핸드폰 전화비는 중국에서 넣어 주어야 사용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그 당시 국경지역에만 중국과 핸드폰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핸드폰 기지국도 중국에 있었다. 무역을 갓 시작한 나로서는 전화비를 자주 넣어 달라고 중국에 부탁하기 몹시 부담스러운 때여서 전화비를 넣어 주겠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 당시 북한에서 핸드폰을 남에게 쓰게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한 것은 핸드폰 사용에 대한 북한 사법당국의 금지령이 내렸었기 때문이다.
 
북한 보위부에서는 불법 핸드폰을 가지고 있거나 사용하는 것은 반국가 행위로 취급했다. 핸드폰으로 국가비밀을 넘기거나 적대행위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화기를 빌려주었다가 나에게 핸드폰이 있다는 것이 북한 보위부에 알려지는 날이면 육체적, 정신적 고통 등 엄청난 곤욕을 치러야 하는 일이다.

 

보위부 사람들은 핸드폰 소유자를 체포하여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이유, 구입경로, 핸드폰으로 어떤 일을 했는가. 특히 한국과 전화한 일이 없는가를 별의 별 방법으로 자백을 받아 내곤 했다.

 

핸드폰 주인뿐 아니라 핸드폰을 판사람, 한번이고 두번이고 사용한 사람이라면 죽기를 각오해야 했다. 국경지역에서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공개 총살을 당한 사람들의 80% 이상이 핸드폰 사용자들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잘 알 수 있다.

 

핸드폰으로 한국과 통화를 하다 북한 보위부에 잘못 걸려 반역행위로 낙인찍히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든가 아니면 공개처형을 당해야 한다.

 

나는 핸드폰을 누구도 모르게 사용하고 있는 때어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박원철이나 그의 아내 최순옥이 내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유는 그의 집에서 중국과 전화통화가 잘 되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과 전화를 할 일이 있으면 박원철의 집에서 전화를 하였다.

 

그만큼 신변의 위험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통화를 박원철네 집에서 허물없이 할 수 있은 것은 박원철의 아내 최순옥과 우리 집 아내와의 관계가 인간적으로 가까워서다.

 

박원철의 아내는 나의 아내와 어릴 때부터 한 마을에서 태어나서  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이다. 최순옥은 유가강이 화교인 까닭에 생활적으로 신세를 많이 지고 또 그와 같은 병원에 근무하다 보니 그들 사이도 어지간히 가까운 모양이었다.

 

최순옥이 나에게 유가강이 중국 친척집에 전화 할 일이 있는데 핸드폰을 한번 쓰게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는 바람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핸드폰을 사용하다 보위부에 알려지면 큰일이라고 하자 최순옥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한 것은 유가강이 회령시 보위부 사람들을 잘 알기 때문에 단속을 당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최순옥의 말에 일리가 있어 보였다. 보위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나 시보위부에 필요한 물건, 생활필수품은 화교들을 통해 많이 얻고 있기 때문에 화교와 보위부의 관계가 가깝다는 것을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여권을 보위부에서 발급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번은 유가강과 함께 최순옥의 집에서 전화를 하고나서 소주를 한잔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유가강에게 어떻게 중국에 자주 드나들 수 있는가 물었더니 웃으며 회령시 보위부의 요구를 들어주면 쉽게 중국여권을 낼 수 있기에 자주 중국에 들어간다고 했다.


회령시 성천동 담당 보위부 지도원은 유가강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 했고 시 보위부에서도 유가강을 여러 번 보아온 나로서는 유가강의 말이 맞다고 생각 했었다.

 

친구 박원철과 아내 최순옥이 장담하고 또 그들과 가까운 사이라 내가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들어주기로 했다.

 

한마디로 핸드폰을 함께 사용하는 정도이면 웬만히 가깝거나 사람 파악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2002년12월이라고 생각된다. 한번은 회령천 가까이 있는 회령인민위원회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의 아파트 집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다 북한 국가보위부 전파 탐지국 사람들에게 체포된 적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평양 국가보위부에 적을 두고 국경지역에 주재하고 있으면서 중국과 한국으로 오가는 핸드폰 전파를 탐지하거나 추적하여 범인을 잡아내는 임무를 맡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회령에도 그런 사람들이 전파탐지기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중국과 핸드폰 통화를 하면 장소를 추적하여 체포해내고 있었다. 그들도 회령시 어느 장소가 핸드폰 통화가 되고 안 되고를 알고 있고  그 지역에 탐지국 요원들이 차를 대기하고 있다가 전파가 들어오면 급습하기 때문에 통화를 5분 이상 하면 안 되었다.


그날따라 중국과 통화가 조금 길어져 10분가량 했는데 그만 국가보위부 전파 탐지국 사람들이 내가 전화를 하고 있던 집 문을 부스고 들어오는 바람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 일로 1주일가량 회령시 보위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중국에서 물자를 내오는 일로 핸드폰을 사용한 것이 밝혀졌다. 나의 직업이 무역기관 책임자였고 평양 본사에서 많은 도움을 주어 다행히 벌금40만원 물고 삼성 핸드폰을 빼앗기고 풀려났었다.


그때 유가강이 통화했던 전화번호가 그 핸드폰에 남아있어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핸드폰에 기록 된 전화번호의 출처를 대라고 곤욕을 치르며 유가강이 중국에 전화 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유가강이 보위부에 끌려가 엄청난 처벌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일 없는 것을 보고는 확실히 보위부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다른 일반 사람들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유가강과 나는 핸드폰으로 중국과 전화를 하면서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2003년 봄이라고 생각된다. 한번은 내가 중국에서 나오는 상품들의 가격을 유가강의 친척들에게 알아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중국 가격을 알아야 북한에 가지고 나오면 얼마나 마진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가강에게 부탁한지 2주정도 지나도 그가 나타나질 않아 그의 집에 가보니 그의 부모들이 하는 말이 당분간 집에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여러 번 찾아가 유가강의 부모님들에게 아들이 어디 갔는지 말해 줄 수 없는가 물었다. 그때야 그의 아버지는 유가강이 중국으로 영원히 살려고 갔다고 했다.

 

나는 한편으로 섭섭했다. '물건 가격을 알아 봐주겠다고 약속 해놓고 가면 간다는 말이나 하고 갈 것이지…' 하는 생각에서다. 유가강을 다시는 볼수 없으리라 했던 나는 뜻밖에 한국에서 그를 만나게 될 줄이야.

 

다음에 계속

 

김정금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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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향나루 ip1 2014-04-08 16:42:46
    유가강에 대한 증언을 잘 보았네요.
    그한테 핸드폰이 없었다고 하는게 좀 의아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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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관 ip2 2014-04-22 09:45:32
    그 자식이 교활 하니 별 오그랑스를 쓸수 있겠지요,
    북한에서는 핸드폰 소유 자체가 불법이니 매일 전화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의 것을 한번씩 빌려쓰고 등 잔 머리를 썼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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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산읍 ip3 2014-07-07 17:15:00
    잘보앗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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