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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보내는 일곱통의 편지3 - 김현아
동지회 26 1104 2006-01-19 09:57:26
다섯 번째 편지

혜정이 어머니 영옥씨에게 보냅니다.

체구는 작지만 당차고 예쁜 영옥씨가 제 뇌리에 아직까지 강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내하며 묵묵히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이상한 병을 지니고 있습니다. 언제나 서로를 의심하고 남의 말을 들어주기보다는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며 타인의 말을 곡해 듣는 병이지요. 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군가를 믿고 속내를 보여 준 적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수년간 중국에서의 도피생활로 인해 더욱 더 심해진 듯 합니다.

혜정이 어머니도 조선족 남편과 숨어 지내며 6년이라는 시간을 마음 조리며 지내왔죠. 영옥씨를 유달리 다른 사람들보다 경계심이 많게 만든 이유는 중국에서의 생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나원에서 함께 생활하던 다른 2명과는 끊임없는 마찰의 연속이었죠. 아이들의 작은 문제까지도 의심으로 이어져서 퇴소할 때 즈음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되었습니다.

만약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둑질을 했다고 의심을 받는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요? 그러나 영옥씨는 여전히 말 없이 묵묵히 인내했죠.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오해를 풀어주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금번 스승의 날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친분도 쌓지 않았던 선생님이 오늘 왜 떠오를까요? 불안감과 긴장감을 갖고 첫발을 내딘 사회생활이지만 지금은 컴퓨터 자격증도 따고 중국에 있는 남편과 국제결혼 절차를 모두 마쳐서 올 7월에 남편도 오게 되었어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누구를 만나든 한결같이 대해주는 선생님의 환한 모습을 보면서 저래서 사람들이 선생님에게만큼은 마음을 여는구나 싶었고 전 그런 선생님이 존경스럽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영옥씨에게 아직 답장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혜정이 어머니! 답장이 늦었죠? 저는 잘 지내고 있답니다. 잘 지내신다는 소식을 들으니 저 또한 반갑네요. 오히려 제가 말없이 묵묵히 견뎌내는 영옥씨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여섯 번째 편지

어엿한 목사님이 될 신학대생 정남이에게 보냅니다.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는 하나원 화단 앞에서 프로그램을 끝내고 함께 찍었던 환한 웃음의 사진 한 장이 떠오릅니다. 3년 전이었습니다. ‘북한에서 교육받으면 저렇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이제야 자연스러운 환한 웃음을 낼 수 있는 정남이는 3년 전까지만 해도 꼬박꼬박 안부도 전해왔는데 갑자기 소식이 뜸하더니 그 후론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내심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연락처가 바뀌어 다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지친 어느 날, 3년만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제 누군지 기억하겠습니까?” 목소리는 매우 안정적이었고 부드러웠다. 깍듯함보다는 편안함으로 다가오는....그래서 받는 이로 하여금 더불어 평온하게 만드는... 진짜 목사님이 된 듯 했습니다.

“상담때 다짐했던 것처럼 선생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2년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기숙사생활 하면서 학교, 도서관만 왔다 갔다 하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만 했습니다. 이젠 3학년입니다. 성적은 상위 20%안에 들어갑니다.”

신학대학 입학은 쉬울지 몰라도 따라 가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닐텐데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했다는 정남이의 소식은 나에게는 큰 감동이었습니다.

일곱 번째 편지

윤씨 할아버지~ 잘 지내시죠?

“아들 통해서 선생님 이야기 많이 들었슴다. 좋으신 분이니까 꼭 찾아가 보라 해서 이렇게 왔슴다..... 아들이 먼저 탈북해서 4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가 얼마 전에 연락이 와서는 남한에 왔다고..... 늙은 내외가 함께 오긴 했는데..... 마누라는 몸이 많이 불편해서 다음 기수로 오기로 했슴다. 저 먼저 왔는데 요즘들어 마누라 생각에 잠을 통 이룰 수 없슴다. 몸은 좀 어떨런지.”

할아버지의 깊이 폐인 주름사이로 흘러내리는 한 많은 눈물. 한참을 그렇게 울먹거려도 서러움이 채 가시지 않으셨죠. 60이 훨씬 넘어서 남한 땅에 오셨고, 자식이 북한을 떠나고 나서 타는 심정으로 4년을 기다리다가 중국 간줄만 알았던 안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와서 남한에 오게 된 윤씨 할아버지.

자식이 너무 보고 싶어서 기운도 없으신 분이 그렇게 서러운 한을 토해내시고 지금쯤 아들, 며느리와 잘 지내시죠? 소식을 전해오지는 않으셨지만 문득 문득 저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과 그 사이 흘러내리던 뜨거운 눈물을 기억합니다.

이젠 그 주름 사이에 환한 웃음을 짓고 계시겠죠? 그동안 떨어져서 속만 태웠던 부모자식간의 애타는 심정을 이젠 도란도란 웃음꽃으로 피우시길 기도합니다.

고향마을 어귀를 지키는 느티나무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줄 줄 아는 지혜로 여러분들을 만나겠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실 우리 교육생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2005년 6월 하나원 심리상담사 김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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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원 2007-03-30 22:34:28
    선생님이 시네요 건강하세요? 저 87기 철민이에요 좋은글 많이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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