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광장

자유게시판

상세
삐라와 나의 생각.
United States 감사해요 5 698 2008-12-02 07:00:51
먼저 이곳을 지나가는 모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십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의견을 남겨주시기에 많은 것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김정일과 조선로동당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며 인생의 전부를 바치면서 살아오신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가 계셨습니다.저는 어려서 부터 아버지의 무릅에 앉아 본 기억이 없습니다.아침 6시에 출근 하면 밤 12시에 들어오시는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니 노력영웅 칭호를 수여하겠다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노력영웅 칭호는 고사하고 욕만 먹고 돌아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조상이 남한에 있기때문에 똥개들의 집안이 무슨 상을 받겠다는 것이였습니다. 그 보지도 못한 조상이 한국에 있는것이 원인이 되여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고 결국 나라의 위기로 인해 살길을 찾아 산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저는 6형제중 셋째였고 이렇게 교육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티티빵빵 내동생 신바람 나서 승리오 자동차 몰고 가지요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 받어니 불쌍한 남한 동포 쌀주러 간대요.
나는 한국은 거지들이 깡통을 차고 다니며 밥을 줏어먹고 빌어먹다가 잘사는 사람들에게 맞아죽는 아이들이 많다고 배워주신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생생합니다.
또 남의 나라에 머슴으로 숨도 제대로 못쉬며 살아가는 한국이라고 배웠어요.
미국놈에게 개처럼 빌어먹는 자존심도 없는 머저리들이 모여사는 나라라고 배웠어요.
그래서 위대하신 아버지 장군님은 조선의 자존심과 위대함으로 우리들을 지키신다고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잘 산다고 하면서 2,16일 4,15일에는 남한의 아이들이 먹어볼수 없는 사탕과 과자를 한키로씩이나 주시는 아버지 원수님을 위해 크면 목숨을 다해 따르겠다고 맹세도 했습니다. 그러던 우리들은 학교를 가려면 15리의 길을 걸어서 산길을 지나 학교를 가야 했습니다.근데 산나물을 삶아 먹은 두 다리가 떨리고 맥이 없어 걸어다닐수가 없어 학교가는 것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언니와 나는 신발이 없어서 비닐을 발에 감고 다녀야 했기에 더욱 갈수가 없었습니다.
시내에서 살때 할머니와 어머니가 집에 남은 쌀 한키로로 떡을 만들어 팔아서 남는 이윤으로 쌀을 사서 죽을 써먹으며 생계를 유지하려고 했었습니다.
근데 안전원이 (경찰)이 그것을 빼앗으면서 하는 말이 장군님의 배려인 쌀을 판다고 어이없는 말을 하면서 떡 함지를 빼앗아 갔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자본주의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는 죄인으로 인정해 채판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아 장사도 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에서 농사나 지워서 생계를 유지하려고 생각하고 나무를 베여내고 밭을 일구며 생풀을 뜯어 먹으며 가을이면 먹고 살수 있다는 의지로 열심히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랬더니 보위지도원이 남한 개들의 집안이라 그런지 꼭 지주놈의 행세를 한다면서 농사한것을 다 헤수 하겠다는 것입니다.
화가 난 저의 할머니는 산 돼지와 많이 나누어 먹으시요 라고 욕을 퍼붓기도 했었습니다.
감자를 심은 밭에는 산 돼지가 와서 다 뚜져놓아서 먹을 수 없었고 옥수수 밭은 곰과 다람쥐 새들이 와서 탕을 쳐서 먹을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피땀은 바람처럼 사라졌고 겨울에는 굶다 못해 꽁 깍지를 삶아 먹고 옥수수 송치를 가루내서 먹고 그러다 못해 거의 죽어가고 있을때 착기에 걸린 쥐새끼를 잡아서 불에 구워서 정신없이 먹기도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조선 로동당원으로서 충실한 사람이였지만 6형제인 자식과 아내와 어머니의 무리 죽음을 참아 볼수 없어 중국으로 식량구입을 떠났고 쌀 한 자루를 가지고 돌아오던중 보위부 사람들에게 잡히여 감옥에서 굶어서 맞아서 죽으셨읍니다.
어머니는 막내를 임신 중이셨고 또 힘든 생활 형편때문에 애기를 지우려고 했지만 의사가 꽁 20키로를 요구 하기에 먹을 것도 없는데 어디서 꽁을 구하냐면서 그냥 애기를 낳키로 결심하고 아버지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임신 8개월 되던 새벽 아버지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놀라면서 애기를 해산 했습니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산막에서 불도 없는 겨울 밤에 애기를 낳게 되였지만 해산 방조할 사람도 없고 76세인 할머니와 10살이던 내가 해산 방조를 했습니다.
천을 자르는 가위로 태줄을 잘를때 할머님이 하시던 말씀이 이저지지도 않습니다 .
무서워하는 나에게 태줄을 꼭 쥐지않으면 어머니가 죽는다던 할머니의 말에 한손에는 미끌거리는 애기를 지고 한손으로는 태줄을 지고 앚아 울면서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라고 외치던 그때를 …이렇게 8삭둥이 동생은 태어났고 키가 작은 남동생을 보았지만 할머니가 죽으라고 얼굴을 땅에 대이게 눕혀놓으면서 눈물을 감추시던 모습과 어머니가 애원하면서 애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그때 나는 5-6살의 두 동생을 안고 앉아 무서워 울기만 해야하던 그때 일들을, 할머니는 동생을 어머니의 품에 돌려주었지만 배가 곱아 어머니의 젖을 파며 젖이 나오지 않아 울고있는 동생을 보며 울고 있을때 집의 옷을 팔아 쌀 한키로라도 얻어 오겠다던 언니는 강도들을 만나 다 빼앗기고 겨우 살아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죽을수 박에 없다고 생각하며 물을 끄려 먹는데 마을 사람들을 감시한는 인민반장 아주머니가 꽁 20키로를 줄테니 120리의 시내에 가서 팔아 벽지와 천정지를 사오면 쌀 5키로를 주겠다는 소리를 듣고 언니는 나의 손을 잡고 내일밤 12시라도 돌아올테니 어머니와 할머니 동생들을 잘 지키라고 하며 떠난 언니는 7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고 해산한지 7일된 어머니는 언니를 찾아 120리 길을 떠나면서 동생을 내 품에 안겨주면서 어머니가 돌아올때까지만 참고 살리라고 하면서 집을 나섯습니다.
나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안전원과 보위부 지도원들의 집을 찾아 다니며 쌀 500구람만 꾸어달라고 했더니 남한의 개들의 종자가 무슨 살겠다고 노력하느냐면서 얼굴에 춤을 받았고 아버지가 나라 반역자라고 욕을 하면서 비짜루로 때리며 쫒아 내는 것이였습니다.
결국 동생은 풀물을 먹다 못해 나의 가슴을 헤쳐 뜯으면서 먹을 것을 찾다가 굶어 죽었습니다.어머니는 언니가 중국에 팔리워 갔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에까지 가서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우유가루 두봉지와 쌀 한자루를 메고 집에 돌아 오셨지만 죽은 동생을 생각하며 울다가 안전원들의 감시에 걸려 중국에 갔다왔다는 것이 발각되어 잡혀 갔고 가져온 것을 다 빼았기고 할머니는 나의 옆에서 환상에 보이는 삶은 감자 한을을 먹고싶어 하시다가 굶어 죽으셨습니다.
어머니는 감옥을 탈출해 집에 돌아 왔고 고문으로 인해 머리가 터져 피를 물처럼 수건으로 짜내며 온 몸에 성한곳이 없이 맞아 운신을 할수 없어 두달을 누워서 계시다가 거의 죽어가는 우리를 보시고는 더이상 나머지 자식은 죽일수 없다고 생각하고 초인적 힘으로 우리 셋을 데리고 중국을 향해 떠났습니다.
나는 5살 동생을 없고 6살 되는 동생을 손잡고 겨우 운신하는 어머니를 부축이면서 10리를 걸자 더이상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발 없는 발에서는 피가 나고 울면서 한 집에 들어가서 5일만 남동생을 봐달라고 부탁하면서 동생에게 5밤만 자면 온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지금도 동생의 말이 귀에서 쟁쟁합니다.
둘째 누나야 왜 막내 누나는 데려가면서 나는 안데려가니 라고 말하던 동생에게 국철아 어머니는 쌀을 메고 누나도 쌀을 메고나면 사탕과 과자는 막내 누나가 메야 하니 빨리 갔다올게 라고 하고는 집을 나섰습니다.
한달만에 중국에서 되돌아가려고 두만강을 건너다가 물이 뿔어 건널수도 없었지만 더 막막한 것은 대통영 성거를 참석하지 않은 자는 총살을 하라는 김정일의 명령이 있었다면서 돌아 가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수업이 한달후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데려와 달라고 했더니 이런 기막힌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애를 봐주던 집의 사정도 어려워지자 애를 박에 내보내 버렸고 결국 바람부는 갈대 받에서 누나야 언제오니 찾으면서 굶어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오빠는 물에 빠져죽고 우리 6형제의 운명은 이렇게 끗이 났고 우리의 집안은 산산 조각이 났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때문에 이런 비극이 일어날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중국에서는 공안들의 눈을 피해 밤에는 땅굴에서 숨어 자면서 개미와 모기에게 뜯기고 낮이면 남의 밭 김을 매주고 삭돈을 달라면 내일 주겠다고 하고는 쌀 한 그릇을 주면 끗이 남니다 만약 가서 돈을 달라고 하면 공안에 신고를 합니다. 이것이 중국에서의 삶이고 이렇게 숨어 살다가 우리는 4본을 강제 북송 당했지만 돈을 비닐에 감아 가지고 먹고 나갔기에 더럽지만 똥으로 나오면 그것을 주어 안전원에게 주고 살아날수 있었습니다.
내가 보위부에는 한국가려다가 잡힌 탈북자가 80%있습니다.
일자리를 해주겠다고 떠난는데 잡히고 보니 한국으로 보내려고 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이렇게 말하며 죽도록 맞으면서 부인 한 사람들은 1년 아니면 6개월의 달련대라는 감옥에 가고병을 만나지 안고 굶어서 죽지 않으면 살아나와 다시 탈북을 하고 고통을 참고 견디지 못하고 사질을 말 하는 사람은 정치범 수요소로 끌려가 죽게 됩니다.
고향에 남아서 장자를 하면서 살아 가느라면 자본주의를 따라하는 행위를 한다고 다 빼앗껴서 가난에 찌들려 살다가 경제범 도둑범 살인범 또 이놈의 나라를 한탄하면 정치범으로 몰려 감옥가서 죽고 그래도 죽기전에 쌀밥 한 그릇이라도 먹고 죽자라고 생각하고 두만강을 넘다가 물에 빠져죽고 여자들은 이리저리로 팔려다니다가 성병에 걸려죽고 또 달아나다가 잡히워 맞아 죽고 이래 죽고 저래 죽고 다 죽을 수박에 업는 사람이 탈북자입니다.
정말 명이 긴 사람들은 한국동포들의 도움을 받아 자유를 얻어 저 처럼 잘 살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번 현명한 방법을 아시는 분들은 가르쳐주세요.
제가 생각하는 방법은 북한 내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할수박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들고 일어나 김정일과 그의 주변에 있는 간신 뱅이 바퀴벌레처럼 백성의 피를 빠라 먹는 그들을 다 죽이고 자유를 찾을수 있는 방법 박에는 그들의 시련과 고통을 해결할수있는 방법박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 사는데 급한 한국사람들이 땅크를 가지고 가서 김정일을 죽이고 그들을 살려줄수도 없는 것이니 말 입니다..
북한 백성이 아는 사실은 오늘도 장군님은 백성의 안위를 위해 끼니도 걸은채 시찰을 나가셨습니다. 옥수수 밥을 뒤로 밀으시며 앞잡이 남한 놈들때문에 어려움을 격고 있는 백성들이 죽을 먹는데 내가 어찌 밥을 먹을수 있겠느냐면서 잠도 못이루는 장군님 부디 건강하시옵소서 …한국은 왜 조선 백성들을 죽이려고 안달입니까?
왜 자꾸 전쟁을 일으키려고 합니까?
왜 자꾸 간첩을 보내 불쌍한 백성들이 먹는 음식에 유리 가루를 넣습니까?
이것이 북한 정부가 가르쳐준 내용의 일부입니다.
한국분들 정말 그렀습니까?
자유를 찾은 내가 아는 한국 사람들은 인자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저는 이렇게 알고 있는 북한 사람들이 김정일이 너무 잘 먹어서 당뇨병이 걸리고 고기를 너무 먹어 동맥경화에 걸려서 앍고 있다는 사실과 한국영화를 본 사람들을 나라의 반역자로 몰면서 한국의 유명한 이민 배우를 좋아하며 그 영화를 본다는 사실들과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 하려고 하는 부부들을 징벌하며 사회에서 생매장 시켜 버리는 김정일동지는 여자만 몇명을 데리고 있는것 등등을 그들이 알고 군인들도 알고 김정일이 이런 악독한 자라는 것을 알고 정신을 차려 떨쳐일어나 자유와 생명을 위해 노력할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있으면서 중국돈 백원에 김정일의 아내들의 사진과 그가 먹는 상어 지느러미의 만찬의 사진을 집집앞에 끼워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근데 한국에 계시는 분들은 더 머리를 써서 고무 풍선으로 삐라를 날려 보내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기쁘고 좋아서 나도 가고 싶었지만 비행기 표를 살수 없어 동참을 하지 못하고 있읍니다.그럼 여러분들이 삐라 뿌리는 것이 틀린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럼 어떻게 하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줄수 있는지 현명한 방법을 알려주세요.
안타까운 심정을 적었으니 이해하여 주시고 많은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좋아하는 회원 : 5
미소천사 찬이 푸른잔디11 이민복 관리자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 찬이 2008-12-02 07:22:54
    글잘읽었습니다. 저도 고모가 지금청진에 있었서 더욱 마음에 와닪네요^^
    힘내시고요 한국사람들이 전부다 반대하는것을 아니니깐 일부라는것을 알아주세요 저도 마음속으로 탈북자들 응원할게요 건강하세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정필 2008-12-02 07:40:53
    삐라 반대하는 분들 이 글을 읽고 생각 좀 다시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자신과 소집단의 이익에 피해가 오는 것이 북한동포를 깨우치는것보다 그렇게 중한가요.
    요즘 삐라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옛날 안중근의사가 이등박문을 사살했을때 그 화가 저희들한테 미칠가봐 안중근을 죽여달라고 일본놈들한테 아양을 떤 것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고 하던데 꼭 그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독립지사들은 빼구요.
    지금도 탈북자가 삐라를 뿌리는 탈북자를 욕하는 것을 보면 그런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남한사람들 초불과 삐라는 성격이 다릅니다.
    삐라는 통일을 위한 운동이지만 쇠고기난동은 집단이기주의의 표현이고 허위와 거짓으로 군중을 혼란속에 몰아 넣은 망동이였습니다
    그것이 국가기강자체를 무너뜨리는 불법집회였음은 물론 김정일과 그 졸개들의 반 이명박 음모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오리 한마리 죽은 것 가지고도 떠들고 불량식품 하나 가지고도 죽을 것처럼 떠드는 나라에서 북쪽의 수천만겨레가 울부짖는 소리는 외면하면서 삐라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그렇게 무서운가요.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아우성치려 고급승용차를 타고 가는 나라의 국민이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남의 일로 별나라의 이야기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미소천사 2008-12-02 07:44:30
    너무너무 슬퍼요 ....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우리 동포 형제를 구원할날 언제 일가요 ?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진정한하나 2008-12-02 09:43:23
    답답한분들 참많군요. 삐라를 뿌리지 말라는게 아니라 지금의 남북한 관계를 고려해서 지금은 자제할때라는거 아닙니까? 굳이 탈북자 전체를 욕먹이고 또한 남북한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가며 또한 남북한관계가 나빠지게되면 정부나 일부 모르는국민들은 모든 책임을 삐라뿌리는 단체에게 책임을 떠넘길겁니다. 그렇게되면 탈북자전체가 욕을 먹게되는거죠. 물론 이명박정부에게 더큰원인이 있지만 말입니다. 크게 생각해보면 지금은 자제하며 남북한관계를 복원하는게 맞을듯하네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벚꽃 2008-12-02 10:47:34
    진정한하나//
    답답하면 여기 않오면 될거아냐??
    왜와서 니 맘고생 해가며 자꾸 퍼온글이나 올리고 그러는데??
    그리고 여기와서는 또 탈북자 전체가 욕먹는게 안타깝다 이거냐??
    참 걱정할꺼도 많다
    밑에 글중에 니가 퍼온글은 온통 탈북자들을 욕설하는 글을 어디가서
    퍼 왔드만 왜 이젠 탈북자들 욕먹는게 안타깝냐??
    언제는 삐라보는 북한사람들 안타깝다며 이제와서는 탈북자들이
    또 안타까워?? 니계좌좀 불러주라 니정신병 치료하는데
    내가 조금 보태줄테니깐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대한건아 2008-12-02 11:00:53
    김정일이 무서운게 아니라 제 생각은 앞으로 우리 민족끼리 피를 흘리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한국은 군사력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먼져 쳐들어가면 북한을 1주일내로 점령할수 있지요 근데 왜 안하냐면 더이상 민족끼리 치고 받다가 다른 나라에 나라를 빼끼는 일이 되풀이되는것을 두려워하는거 입니다. 개인적으로 삐라를 반대하는 이유는 너무 노출이 된다는거 입니다. 이미 북한 당국은 삐라에 대해서 알고 대처하고 있습니다. 북한당국 모르게 주민을 선동해야지 대놓고하면 별 효과가 없다는거 입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대한건아 2008-12-02 11:22:16
    두번째 이렇게 신문에 광고하면서 일을하고 하는것은 정치적 목적도 어느정도 결여되있다는것 같아보입니다. 모르게 하세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진정한하나 2008-12-02 18:23:52
    벚꽃/ 나에게 보내줄돈있으면 북한주민들 돕기에나 써주시길...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평양예술단 노동부 지원 3년 확정
다음글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