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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의 설음 (정착수기)
Korea, Republic o 언덕 0 1021 2011-02-03 20:19:36

 

따르릉····· 따르릉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벅적지근한 몸을 가까스로 자제하며 요란스럽게 설쳐대는 핸드폰의 액정 캡을 열어 보았다.

“저~ 영철씨! 나라 안전 경리에요. 요즘 하는 일 없으시죠?”

 

한껏 애교가 넘친 40대 후반의 회사 경리였다. 그의 로우 톤 목소리가 어줍게 포화된 나의 머리를 순식간에 깨워주며 달팽이관을 여지없이 들추어 놓았다.

“무슨 일이 있어요?”

 

대뜸 회사에서 제기되는 일이 있으면 나를 찾는 그들이어서 분명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올 것만 같은 느낌이 왔다. 여러 달 전부터 이 회사에서 일당으로 일한 덕분에 인맥은 조금이나마 쌓여 있었다.

“휀스 75개를 만들어야 되는 데요. 사장님이 영철씨를 찾으시거든요. 그러니 오늘 회사로 나 올 수 있을까요?”

 

오랜만에 제기하는 경리의 제안은 나에게 있어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아파 회사생활을 접고 겨우내 살아가는 팔자라 일당이라도 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 그래서 다짜고짜 경리에게 조건부터 따졌다.

“일당은 얼마나 주실 겁니까?”

“15만원이요. 5일은 예상해야 하거든요. 그럼 영철 씨를 믿고 다른 사람은 부르지 않을게요.”

“알았습니다! 금방 달려가겠습니다. 보조공은 내가 잘 아는 사람으로 데려 갈렵니다.”

 

나는 경리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지만 같이 해야 할 보조공은 반드시 내 타임에 맞는 사람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마침, 다행이도 내 주위에는 용접과 제관을 십 수 년 동안이나 자기의 몸으로 갈고 닦은 베테랑 조선족이 있었다.

그와 함께 달려간 현장은 주인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수많은 자재들로 쌓여 있었다.

 

경리는 일단 사장과 토론하라고 하였다.

아침 해가 살짝 부끄러운 머리를 내미는 시간이 되어서야 회사로 사장이 나왔다.

 

나는 출근한 사장을 만나 작업의 세부화와 인건비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사장은 이번 주 내로 작업을 끝내야 한다며 빨리 할수록 좋다고 하였다.

“사장님! 내가 보건대 철야를 해서라도 3일이면 끝낼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야리 끼로 합시다. 내가 3일을 하던 4일 동안을 하던 5일분의 인건비를 그대로 줄 수 있죠?”

 

사장은 나의 대답에 모처럼 기쁜 것 같았다. 복슬복슬한 얼굴에 작은 입술을 가지고 있는 사장은 웃음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야 그러면 좋지! 그렇게 하자! 내가 5일분 인건비는 줄 테니까 빠른 시일 안에 끝내도록 하자.”

 

사장은 단도직입적이었다. 그와의 계약이 순조롭게 끝나고 나와 보조공은 그 시간부터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도 자기 뼈다귀를 놀려 버는 돈이야말로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싶어 7월의 무더위를 극복하며 무한정 뛰기로 하였다.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은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일단 스텐파이프 65A를 100A파이프의 두 기둥 사이에 세 개씩 정해진 수치의 맞춤으로 용접을 해야 하였다. 그리고 두 기둥은 캡을 씌어 용접하고 그라인더로 반듯하게 시하기를 해야 하며 그 머리위로 ㄷ 자형 파이프까지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75개나 되는 양이어서 65A파이프만 225개를 절단으로 기둥라인에 맞추도록 가공해야 했고 기둥은 무려 150개나 용접및 가공을 해야 하였다.

휀스 자체의 양쪽 기둥으로 65A 가름대 3개가 들어가고 기둥머리로는 ㄷ 자형 파이프가 이쁘게 붙어있어야 했다.

 

완제 품 자체는 그 길이만 하여도 무려 3미터 달했다. 거기에 1.2mm두께의 기둥을 그보다 작은 1mm 두께의 가름대로 연결용접한다는 것은 기술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가 없다.

 

특히 캡을 용접으로 일일이 붙이고 시공까지 하는 것은 기술의 노하우를 더 많이 요구했다.

 

물론 이 휀스를 전달에도 300여개나 해 본 경험이 있어 첫 눈에 벌써 견적 같은 것을 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철 작업이 그러하듯 힘을 동반하지 않고는 절대로 성사되는 것이 없다. 아무리 노하우가 많아도 철이라는 무게의 한계는 인간의 상상을 항상 초월하곤 하였다.

 

나와 보조공은 야근까지 강행하며 약속한 시간을 맞추려고 무진 애를 썼다. 기름 값이 아까워 라면으로 저녁과 아침을 떼이며 회사의 한쪽 모서리에 비치된 컨테이너박스 안에서 숙식하여 갔다.

 

일솜씨가 시간이 다르게 진척되자 땀으로 범벅이 된 우리들을 공장부장이나 팀장은 혀를 찼다.

“무엇하려 그렇게 열심히 해요? 그러다 병이 나겠어요.”

 

참 좋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병!!!

사실 인간에게 있어 병이란 언제 어디서 등장할지 모르는 악 순환의 연결 고리였다. 그런 병은 이미 나의 몸을 여러 차례나 휘감고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중추적역할인 척추가 손상된 것은 나에게 있어 실망, 그 자체였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허리 디스크가 말썽을 일으켜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수술 경과가 좋지 않아 여태껏 그 고통에서 헤매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써도 허리 전체에 무리가 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눈앞은 노랗게 변했고 오른 다리로 내려가는 통증이 날이 갈수록 커만 갔다. 거기에 어깻죽지에 붙은 오십 견의 염증이 복병으로 찾아와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하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몸이었다. 그래도 쉴 수 없는 몸이어 기회가 있으면 배운 재간을 써 먹으려 끈질기게 노력했다.

 

모든 악 조건을 물리치고 사장과의 약속시간이 서서히 끝나가던 날,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회사 경리에게 다가갔다.

“아줌마! 내가 일한 내역을 볼 수 있을까요?”

 

점심 수저를 항상 먼저 놓는 경리여서 그날도 경리는 책상머리에 앉아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그럼요. 한번 봐보세요.”

 

경리가 재빠른 솜씨고 노동 계약의 내역을 뒤졌다. 한참이나 뒤적이는 경리의 컴퓨터에 눈길을 보내던 나는 갑자기 나의 이름이 붙어있는 내역으로 들어가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제일 위에는 <북 이주민>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3명의 탈북자들이 회사에 더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다 나와 같은 내역에 집결되어 있었다.

 

그 페이지를 보는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온 몸이 경직되며 경리가 두드리는 자판기의 소리가 마치 함석지붕위에 우박이 후다닥 떨어지듯 요란을 떨며 달팽이관으로 무섭게 들려와 심경을 건드렸다.

 

뭐라고 할 말을 잃었다. 한참이나 아무 소리 없이 바보처럼 서있던 나는 가까스로 무거운 몸을 돌려 땅으로 잦아드는 다리를 이끌며 현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북한에서 누가 오래서 온 몸은 아니지 않는가?

이들의 편차가 있어도 어쩜 조금이나마 도와주려는 차원에서 따로 우리만 표기해 두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쩐지 불안한 마음을 털어버릴 순 없었다.

 

더욱이 약속한 인건비가 제대로 차려질 것만 같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한 개를 완성하고 다시 사장을 만났다.

“작업을 완성하였으니 인건비를 주어야죠. 사장님!”

 

사장은 몹시 바빠하는 기색이었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주면 안 될까?”

 

약속을 어긴 그의 말에 갑자기 화가 났다.

“안 돼요! 저 중국 사람은 다른 작업장으로 가려던 것을 제가 끌고 오다시피 데려 온 사람인데 사장님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정말 황당하군요. 왜 약속을 어기는 거예요?”

 

사장은 어색한 웃음을 띠며 눈을 굴렸다.

“당장 회사에 자금이 없어 그래! 물건을 보내야 받을 거 아니냐? 아, 나도 정말 미치겠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을 시킬 때와는 180도로 돌변한 사장의 처사에 피가 거꾸로만 솟아올랐다. 그의 행동으로 보아 한 푼도 제대로 받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면 저의 인건비는 며칠 미루더라도 내가 데려 온 보조공의 인건비는 주어야 합니다. 그 것까지 어기면 가만있지 않을 거요.”

“그래? 고맙다. 네가 조금이나마 이해하여 주어서 정말 고맙다. 내가 경리에게 얘기하겠으니 보조공의 인건비는 어떻게 하나 구해보도록 노력할게!”

 

사정으로 양해를 구하는 사장의 확답을 받고 그 날 보조공의 인건비가 겨우 해결이 되었다.

경리는 인건비봉투를 나에게 건내주면서 말했다.

“아유~ 말도 말아요. 이 돈을 구하자고 집에 남은 돈과 친구의 돈까지 빌려가지고 가까스로 마련했어요!”

 

그의 말에 어쩐지 고맙기만 하였다. 그래서 한 달은 나의 인건비를 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록 나의 인건비는 꿩 꿔먹은 소리처럼 되는 것 같았다.

 

너무 답답해 추석 며칠 전, 회사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영철아! 조금만 참아줘. 추석 전에는 꼬옥 해결해 줄게!”

 

사장의 대답은 절절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고 추석이 지나고 신정이 되어도 사장의 며칠 내로 주겠다는 대답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오늘, 내일 하는 것이 이제는 6개월을 넘어 신정도 지나버렸다. 사장은 이젠 신정이 지나자 아예 전화를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의 행동에 은근히 화가 났지만 다른 방도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던 신정이 지난 어느 날,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담당형사와 회사로 갔다.

 

형사는 일단 좋은 말로 일을 풀어나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회사에는 사장이 없었다.

 

회사부장의 말을 따르면 사장이 며칠 전부터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고 하면서 나의 인건비는 지불한 것으로 알았단다. 그러면서 사장이 회사로 출근하면 자기가 꼭 책임지고 인건비를 주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 부장은 물론 사장에게도 감감 무소식이어 다시 수화기를 잡았다. 그런데 오늘은 뜻밖에도 사장이 모처럼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야! 너는 왜 경찰까지 회사로 데려와 그러냐? 경찰이 뭐 이런 일에까지 나서면서 그래? 내가 그런다고 경찰을 무서워 할 줄 아느냐? 나도 이젠 사업을 시작한지도 7년이 넘는 사람이다. 그런데 너의 몇 푼이나 되는 돈을 떼어먹고 순간이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도 자식을 가진 사람으로 여태껏 남한데 나쁜 짓은 하지 않았어? 이 번 주는 꼬옥 해결해줄게. 당장 받아야 할 돈 1900만원 때문에 지금 은행에 앉아 있거든.”

 

사장은 당장이라도 줄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에 의문점이 생겼다.

돈 몇 푼이라! 글쎄 사장에게는 하룻밤 술추렴에 쓰일 돈일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그 돈 몇 푼이 생사가 달린 것이었다. 그 돈 때문에 북에 있는 처자식을 데려 올 수 없었으며 그 돈 몇 푼 때문에 허리에 수술 칼을 대야만 했다.

그에게는 한갓 장난기에 불과한 돈이어도 나에게는 1만원도 쉽게 볼 수 없는 귀하기만 한 값어치였다.

 

사장은 이런 식으로 구정까지 주겠다는 인건비를 이 시간까지 미루고 있다. 참 벼룩이 간이라도 뜯어먹을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의 월급과 인건비는 다 주면서 왜 나의 인건비만 아직까지 미루려드는지 사장의 의도가 의심될 뿐이다.

 

결국 사장이 오늘까지 돈을 주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북한 이주민이라는 편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장갑을 낀 고양이는 절대로 쥐를 잡을 수 없다는 말처럼 지나 온 나의 과거가 이렇게까지 꼬리가 긴 줄은 몰랐다.

 

과연 이 조국 땅에 이주민의 허물을 벗어 던질 수는 있을까?

사장과 같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로 세울 수는 있을까?

 

나는 올해들어 8년차 되는 대한민국의 정착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수많은 위구심이 얽힌 전기회로처럼 나의 머리를 혼잡스럽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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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사대 ip1 2011-02-03 21:46:04
    우리는 어떻게하나 자영업을 하여야합니다 그길만이 온갖 수모와 차별과 시기 질투를 극복하고 현지인들과 경쟁할수잇는 길입니다

    님과 똑같은 상황과 더한상황을 지금도 격으며 저도 싸우고 잇습니다

    우리가 일단 이땅에서 노가다나 식당일 인권비 착취를 당하며 일을 할때는 별루 문제가 없습니다 참으면 되니까요

    허나 사업이라는것을 시작한 날부터 이방인의 고통과 설음을 많이격어야하며 이곳 사람들은 당연히 차별해야한다는것이 바로 편협한 남한인들의 생각입니다

    오죽하면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 마을사람들은 아직도 함경도 인들끼리 모여살고잇습니다

    싸워야 합니다 사장의 집에 찾아가 드러누워야 합니다 너죽고 나죽는다는 각오만이 문제를 해결할수 잇습니다

    여기 감옥은 북한의 호텔이다 이리 생각하고 잇다는것을 그사람과 사장 가족들에게 인식시켜 주어야합니다

    인간은 어머니 품에서 앙 하며 떨어질때 세상과의 싸움을 선포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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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휴 ip2 2011-02-04 00:01:35
    학사대님처럼 신형아반떼를 뽑는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임금을 못받는 분도 있군요. 저도 군제대해고 노동을 했는데 일당 며칠주더니 계속 일을나가니까 한달있다 준다고 하고 한달지나면 돈이 들어오지 않아 두달 있다 준다고 하고 .. 그래서 용돈이 필요하다고 하니 조금씩 주더군요. 그리고 보름치 임금은 못받고 다른일을 찾았지요.. 내가 탈북자라면 학사대님을 찾아가 얘기라도 해보고 싶은데. 농촌같은 곳은 일할사람이 없는데. 그리고 집값도 싸고 아무도 살지 않는 집들도 찾아보면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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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이 ip3 2011-02-04 10:13:12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나쁜놈들을 부지기수로 만날 수 있죠...임금을 체불하는짓은 정말로 해서는 안되는데요....꼭 북한이주민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장놈은 정말 나쁜놈이네요..반드리 꼭 이자까지 쳐서 받아내야죠,,,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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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부 ip4 2011-02-04 12:15:20
    노동부 임금체불이라고 검색해 보았나요?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납니다.
    옛날에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해야 할지 몰라서 못했지요.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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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런사장은그냥콱 ip5 2011-02-04 12:32:12
    노동자의 돈을 떼먹는 놈들은 혼이 나봐야 합니다. 학사대님 말처럼 매일 가서 드러눕고, 큰소리로 항의하고, 아는 사람들하고 같이 가서 마구마구 항의해야합니다. 저 사장들은 형사들은 무섭지 않다고 해도, 자기네들이 거래하는 거래처는 무서워합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저 악덕사장의 행위를 알도록해서 저 놈들의 신용이 형편없다는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북에서 오신분들... 절대로 주눅들지 마십시오. 영어를 모른다고 주눅들지 마십시오. 컴퓨터를 모른다고 주눅들지 마십시오. 내가 보기엔 다 그 수준이 다 그 수준입니다. 영어를 안다고해도 말도안되는 콩글리쉬일뿐... 절대로 주눅들지 마세요. 민주주의 법은 잠자고 있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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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리커 ip6 2011-02-04 15:48:34
    흠...이건 이주민이기 때문에 겪는 일이 아닌것 같은데요.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서 겪는 일인데..남한 사람들도 이런 일 비일비재하게 겪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게 되면 겪는 설움입니다. 일을 다 끝마치시고 돈 문제가 정 해결이 안되어 외상으로 하시게 되면 꼭 그자리에서 간략하게 간이차용증이라도 써서 상대방의
    사인이나 지장이라도 받아두세요. 솔직히 한 3-4일 정도 정규직 직원이 아닌 구두로 계약해서 가게 일하게 되면 그냥 말로들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종이에 쓰기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이런거 사람 믿어야지 하면서 아무것도 안쓰는데..절대 그러지 마세요.

    금액이 5만원 이상이 되면 반드시 종이로 계약 내용을 남겨두세요..이런거 챙겨 두시고요

    그러면 1.보호하는 형사분한테 말하셔도 되고 2.소액심판제도 이용하셔도 되고 3.노동부의 체불임금관련해서 신청하셔도 되고 ..방법을 모르시면 주변에 물어보셔도 되고 인터넷 검색을 하셔도 되고..

    이런건 탈북자의 설움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설움입니다. ㅎㅎ 우리사회가 아직 비정규직에대한 안전망이 상당히 부족해요..특히 비정규직으로 처음 일하시는 분들이 이런 일을 자주 겪더라고요..비정규직을 많이 해오신 분들은 몇 번 겪다 보면 이런 일을 잘 안당하십니다.

    그 사장한테 차용증 혹은 일했다는 증빙서 같은 거 전혀 안받아 두셨죠 ? 처음에 일하실때 이런 종이 안써준다고 하는 사람하고는 일하지 마세요. 오히려 집에서 쉬는게 돈이 남는 일입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탈이에요

    우리 인생이 그런거죠..뭐...새해도 됬는데 훌훌 터시길...여기서 근데 8년을 사셨으면서

    이런 일을 겪나요 ? 더 겪어보셔야 할듯(덕담으로 한 말이에요.더 겪지 마세요.ㅎㅎ).그나마 다행히 5일치 임금만 못받으셔셔 다행인듯..저는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1년치 임금을 못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회사인데...회사가 파산을 했고 회사 사장이 미국으로 도망갔죠..저같은 경우는 노동부에 신고를 해도 경찰을 동원해도 받을 방법이 없어서 포기한적이 있는데..얼마 전에 그 사장이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살더라고요. 근데 그 사장이 재산이 없어서 역시 돈을 받을 수가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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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리커 ip6 2011-02-04 16:01:35
    그리고 경리가 북이주민이라고 쓴 글에 상당히 맘이 상하신듯...이런 걸로 맘이 상하시면 어떻게 사실려고...계약직으로 일을 안해보신듯...계약직(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아십니까 ? 정규직들은 정식급여외에 회사에서 한 해의 실적이 좋으면 보너스(상여금)를 지급하거든요. 그런데 계약직(비정규직)은 그런 보너스도 못받습니다. 새해가 돌아와도 계약직은 서류상에 계약직으로 구분이 되어서 남들은 떡값이다 뭐다 받는데..그저 계약직으로 구별되어 있어야 되고..정규직들은 회식을 하러 간 빈사무실을 지켜야 되는 경우도 있고...

    아직 남한사회를 더 겪어보셔야 할듯..어딜가나 먹고사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시면 안되요.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새해부터 좋은 말을 하러 들어왔는데 이런 말을 해서 참.
    새해 좋은 일만 생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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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인 ip7 2011-02-08 14:49:08
    30대 남한 사람입니다. 남한 사람들도 임금 못 받는 경우 많습니다. 임금을 받거나 못 받는 문제는 개인의 판단력이나 끈기와 용기가 더 중요한 원인입니다. 임금을 제 때에 줄 수 있는 고용주인가를 판단하고, 내가 똑똑해서 고용주가 임금을 안 주더라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으면 됩니다. 고용주도 사람이 똑똑한지 봐가면서 임금을 안주는 것이지, 남한 사람 북한 사람으로 갈라서 북한 사람만 안주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은 파악 못하고, 몇몇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 시키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진실도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남한 사람이나 북한 사람 둘 다 어렵습니다. 좀더 현명해 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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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룸펜 ip8 2011-02-13 05:11:02
    서럽기는 뭐가 서러우세요.
    원래 한국이 그런 나라고 한국에 그런 나쁜 넘들이 많아요....
    너무 서러워하지 마시고 부지런히 돈 많이 버세요...
    님이 성공하시면 많이 베푸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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