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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김정일이 숙청을 즐기는 이유는??
Korea, Republic o 이무기 0 331 2011-10-11 12:13:06

[北 경제 상황 어떻기에… 왜 사령탑 잇달아 숙청됐나]
2009년 개혁 이후 北경제 - 생필품 90%·식량 70% 시장에서 조달할 정도
홍석형 왜? - 中 발전 모델 건의했다가 "내통" 강경파 비판받은 듯


작년 초 총살된 것으로 파악된 박남기 전 당 계획재정부장에 이어 후임인 홍석형까지 숙청된 것으로 알려지자 안보부서 당국자는 5일 "북한 권부 핵심에선 계획재정부장이 '독배(毒杯)를 드는 자리'로 인식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홍석형은 벽초 홍명희의 손자다.

 

◆박남기 화폐개혁 실패로 총살설

박남기의 경우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썼다는 게 정설이다. 북한은 2009년 11월 구화폐 100원을 새 화폐 1원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시장 활동을 억제했지만 이내 주민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전국적으로 화폐개혁과 시장 탄압에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북한은 진화에 나섰다. 김영일 총리를 시켜 작년 2월 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인민반장(우리의 동장에 해당)들 앞에서 공개 사과를 하게 한 데 이어 박남기를 숙청했다.

 

홍석형은 화폐개혁 실패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기 위한 경제적 기반을 조성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화폐개혁 실패 후 어쩔 수 없이 묵인해온 사(私)경제 활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라는 지시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홍석형 '중국과 내통' 혐의

하지만 북한의 사경제는 화폐개혁 이후 더욱 활성화하며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주민들은 생필품의 80~90%, 식량의 60~70%를 시장에서 조달할 정도로 사경제 의존도가 높다"며 "경제적 자생력을 갖춘 주민들이 김정일·김정은 우상화 교육과 공안 통제를 경시하면서 당국의 영(令)이 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내년에 '강성대국'을 열겠다며 추진해온 각종 토목 공사들은 줄줄이 차질을 빚고 있다. 북한은 이런 사업들에 쓸 물자와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지하자원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형편이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홍석형이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을 일부 수용하자는 의견을 개진했다는 정보가 있다. 한 소식통은 "김정일의 방중 성과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홍석형이 그런 말을 했다가 보수 강경파로부터 '중국과 내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잘렸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김정일 "경제실패는 부하 탓"

경제문제에 자신이 없는 김정일은 "수령님(김일성)께서는 생전에 내게 절대로 경제사업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는 핑계를 대면서 경제 문제를 관료들에게 일임해왔다. 그런 후에 성과가 안 좋거나 개방이 거론되면 목을 치는 행태를 되풀이했다.

이런 식으로 숙청된 고위급 경제 관료가 1990년대 이후에만 최소 9명인 것으로 정부는 파악한다. 이 가운데 복권된 인사는 2010년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한 박봉주 전 내각 총리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총살되거나 지금껏 행방불명이다. 아사자가 속출하던 1997년 9월 민심을 달래야 한다는 명목으로 평양 시민들 앞에서 공개총살된 서관히 농업 비서처럼 사망이 확인된 인사가 3명, 시장경제 도입을 주장하다 1998년 이후 자취를 감춘 김정우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 등 행방불명자가 5명이다.

 

☞노동당 계획재정부

노동당 비서국에 소속된 20개 전문부서 중 하나로 북한의 경제 사령탑이다. 1990년대 초반 경제계획부, 중공업부, 건설운수부, 농업부 등으로 나뉘어 있던 당 경제부서들을 통·폐합해 2005년 7월 만들어졌다. 경제 비서의 감독하에 경제 정책을 수립해 내각에 지시하는 역할이다.

 

☞홍명희

일제 강점기에 이광수·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린 인물.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휘문고보 교사, 연희전문 교수 등으로 활동했으며 1928년부터 '임꺽정'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면서 최고 인기 작가가 됐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위원장을 맡았으며 1948년 월북, 북한 내각의 초대 부수상을 지냈다. 1968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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