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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일본인 요리인의 수기..< 4 > 편. 시리즈
Korea, Republic of 돌통 0 601 2022-06-01 01:34:21
< 4 >편


※   열흘에 한번꼴로 김정일 연회에 불려가..

다시 한번 북조선에서 일하고 싶다


○   귀국 선물로 받은 송이버섯

?

당시 김정일은 열흘에 한 번 정도는 나를 찾았다. 그래서 내가 식당을 비우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손님들이 “후지모토 씨, 어디를 그렇게 다니는 거야?”하고 물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난 적당한 핑계를 대며 얼버무렸다. 김정일에게 불려간 일이나 장소에 대해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1982년 말 일본으로 일시 귀국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우동과 메밀국수를 사왔다. 그것으로 메밀국수와 튀김우동 등을 만들어 메뉴에 추가했더니 귀국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 이렇게 맛있는 메밀국수와 우동을 먹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모두 기뻐했다. 한 그릇에 1,500엔이나 되는 비싼 가격이었으나 순식간에 다 팔리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식당 일에 적응해가면서 2월, 3월, 4월이 지나갔다. 그런데 5월에 접어들 무렵 안산관 책임자와 사소한 의견 차이가 생겼다. 나는 더 이상 이야기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사표를 내기로 작정을 했다. 나는 1년 계약으로 북조선에 왔으므로 원래대로라면 7월에 귀국해야 한다. 그러나 계약 기간 1년을 다 채우지 못한 나는 일본의 황금연휴 기간인 5월로 접어들 무렵에 북조선을 떠났다.

그 당시 내가 곧 귀국하게 되리라는 것을 김정일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4월 말쯤 김정일에게 불려가 초밥을 만들고 있을
,김정일이 느닷없이 물었다. “후지모토, 일본에 들어가나?” 내가 깜짝 놀라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김정일이 다시 물었다. “내가 선물 하나 하고 싶은데 뭐가 좋겠는가?”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송이버섯을 받고 싶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김정일은 당시 서기실장이던 이명제 부부장을 불러 송이버섯을 갖다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송이버섯은 제철이 아니었는지, 이명제는 내게 송이버섯 통졸임을 전해주었다. 귀국하기 전날, 안산관의 지배인과 보조 요리사, 그리고 웨이트리스들이 나를 위해 송별회를 열어주었다. 모두 울먹이면서 몹시 서운해했다.

○   다시 북조선에서 일하고 싶다

귀국 후 나는 북조선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가며 두 달 정도 한가롭게 지냈다. 그러고 나서 이제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때마침 아는 사람이 찾아와 초밥집 한 곳을 소개해주었다. 가와고시 시에 있는 사카에스시라는 초밥집이었는데, 일단 나는 거기서 일하기로 결정했다.

가와고시 시내의 이시하라초에 있는 사카에스시는 단골 손님도 많고 그 지역에서는 제법 이름도 알려진 초밥집이었다. 손님이 많아 초밥용 밥을 한 번에 석 되씩 하루 평균 7~8회, 바쁠 때는 12~13회, 그리고 정초에는 25~30회나 지었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사장님, 기모노 복장이 잘 어울리는 사모님과 더불어 나는 매일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새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4~5개월이 빠르게 지나갔다. 12월로 접어들 무렵, 사모님은 느닷없이 식당을 내게 맡기고 싶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않을 요리사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요리사가 추구하는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쁘긴 했지만 나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거절했다.

식당을 맡게 되면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행동해야 하는데, 내게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조금 더 수양을 한 다음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참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나는 그 당시 사모님의 따뜻한 배려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을 밝히자면 나는 그때부터 북조선에서의 생활을 자주 그리워하곤 했다. 김정일 앞에서 초밥을 만들던 모습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기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 유라쿠초에 있는 닛초 무역상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가와고시의 초밥집에서 일하는데, 다시 북조선에서 일하고 싶으니 혹시 요청이 있으면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1985년 6월, 나는 2년 가까이 일하던 사카에스시를 그만두고, 가나가와 현 쓰쿠이에 있는 야오타쓰스시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직장이 바뀔 때마다 닛초 무역상사에 새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야오타쓰스시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손님도 많아 항상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내가 그곳에서 일한 지도 어느덧 두 해가 지났고, 계절은 바야흐로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당 주차장에 벤츠 한 대가 들어와 서더니 남자 세 사람이 식당 문을 열었다. 그 중 한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은 북조선에서 내 통역을 담당했던 임상종이었다.

“후지모토 씨, 오랜만입니다.” 임상종을 보자 나도 모르게 옛날 그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얼른 정신을 가다듬고 “정말 오랜만이군요”라고 화답했다. 그러자 임상종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찾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아, 이 날이 오기만을 얼마나 애태우며 기다렸던가! 나는 당연히 가겠다고 그 즉시 대답했다. 그리고 “북조선에 가고 싶어서 닛초 무역상사에 오래 전부터 부탁해놓았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말에 임상종은 매우 기뻐하며, “일이 끝나면 내가 묵고 있는 뉴오타니 호텔로 와주십시오. 거기서 자세히 말씀드리지요”하고 자리를 떠났다.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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