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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거짓말 또 드러나… 딸은 살아있을것”
동지회 545 2006-04-12 16:54:08
메구미 남편은 납북 김영남씨
日 메구미 부모의 투쟁


◇ 메구미의 부모 일본 정부로부터 북한에 피랍된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의 DNA 분석 결과를 공식 통보 받은 부모 요코다 시게루(오른쪽)와 요코다 사키에 부부가 11일 도쿄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회견을 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제공

- 요코다 메구미, 김영남

“북한의 거짓말이 새로 드러났습니다. 하루 빨리 한국의 가족들과 지원단체 분들을 만나서 함께 노력하자고 할 겁니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가 북한에서 결혼한 남편이 피랍된 한국인 김영남씨라는 사실이 발표된 날,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다 시게루(橫田滋·74), 어머니 사키에(橫田早紀江·70)씨는 총리관저 기자회견장에 나와 있었다.


77년 13세 중학생 딸 귀가길에 실종

“10분만 빨리 마중갔어도… 가슴 미어져”

가정 풍비박산… 20년지나 北생존 들어

구출 서명운동 투쟁에 日정부 움직여

“메구미가 귀국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요즘은 국제결혼도 많아졌고, 결혼상대는 누구라도 상관없어요. 하루라도 빨리 메구미의 건강한 모습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딸이 살아 있다고 굳게 믿는 어머니 사키에씨는 “김영남씨 가족들도 고뇌의 인생을 살아왔겠지요. 그분들에게 우리도 같은 처지였다면서 위로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날 기자회견에서 “북한 김계관 외무부 부상은 도쿄에 왜 왔나. 정말 후안무치하다”고 항의할 때와는 달리 밝은 표정이었다.

아버지 시게루씨는 “손녀딸 혜경이를 지금까지 키워준 김영남씨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에게 1977년 11월 15일 일본 니가타(新潟)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된 딸 메구미는 납치 당시 13세 중학생 모습으로 살아 있다. 27년 전 그날 오후 6시30분이 돼도 중1의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가 마중을 나갔다.

친구들과 헤어진 딸은 집에서 불과 50m 앞둔 지점에서 실종된 뒤였다. 평범한 샐러리맨의 가정을 덮친, 딸의 실종이라는 불행은 가혹했다. 2004년 말 기자가 사키에씨를 찾았을 때 딸이 실종된 이후 가족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10분만 빨리 마중 나갔더라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집니다. 소각장에서 불에 그을린 시체가 발견된다든지, 바다에 변사체가 떠오르면 그때마다 딸일지 모른다고 가슴 졸이며 경찰서로 뛰어갔습니다.

남편과 아들이 출근하면 집에서 울고, 저녁을 준비하다가도 울고, 니가타에 눈이 내리면 창밖을 바라보면서 울었습니다. 가정은 풍비박산 났습니다. 1997년 1월 망명한 북한 공작원 안명진씨로부터 딸이 북한에 살아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거기까지 20년 걸렸습니다.”

안씨가 소개한 딸의 소식은 처참했다. 공작선의 비좁은 공간에 갇혀 끌려가면서 손톱으로 선체 벽을 긁어대며 “엄마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했고, 배가 북한에 도착할 때 손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고 한다. 18세 때, “조선말을 열심히 익히면 일본에 돌아갈 수 있다”던 약속이 거짓임을 알고, 신경쇠약으로 두 번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부모는 이런 사실을 듣고는 가능한 한 빨리 딸아이를 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997년 3월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 연락회’가 발족되고 아버지가 회장을 맡았다.

요코다 부모는 마이크를 들고 전국을 돌면서 서명운동을 벌이는, 납치문제의 상징적인 존재로 변신했다. 단시간에 50만명의 서명이 모아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에 납치된 메구미가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는 다구치 야에코와 한동안 함께 생활했다는 증언이 속속 등장했고, 메구미는 일·북관계의 키워드가 돼 갔다. 무관심하던 일본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한 2002년 9월17일, 딸의 죽음을 통보받았다.

“언젠가 사람은 죽는다. 메구미는 정말 강렬한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사키에씨는 “져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울음을 참았다. 부모는 딸 실종 후 세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풀지 않고 있는 짐이 하나 있다. 펜으로 메구미의 ‘메’라는 글씨가 적힌 종이상자다. 거기엔 딸의 잠옷과 교과서, 좋아하던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이 꽉 차 있다. 사키에씨는 “딸아이가 돌아오면 이렇게 소중하게 보관해왔다고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사키에씨는 지인의 권유로 성서를 보게 됐고 다시 자신을 찾고 있다. ‘욥기’에 나오는 “주님은 주시고, 주님이 거두신다”는 구절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소중하게 키워온 아이를 단 한 사람을 위해 납치한다는 것은, 나라를 떠나서 인간으로서 안 된다고 호소합니다.

내 딸을 빼앗아간 그 사람은 정말 밉지만 북한의 일반 국민들은 정말 순수하다고 생각하며 구원하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 딸과 북한 주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 키워드 요코다 메구미 사건

지난 1977년 11월 15일, 일본 니가타(新潟)에서 중학 1년생 요코다 메구미(당시 13세)가 실종됐다. 단순 실종으로 분류됐던 이 사건은 귀순한 북한 공작원 안명진씨가 “북한에서 납치된 일본 소녀를 봤다”고 증언하면서, 20년 만에 전면에 떠오른다. 또 북한의 납치문제가 일·북간 최대 현안이 됐다.

2002년 9월 일·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납치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북한은 요코다가 1986년 ‘김철준’이라는 북한 사람과 결혼해 이듬해 딸 혜경을 낳았으며 1993년 3월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나중에 자살일자를 1994년 4월로 정정했다. 2004년 12월 북한은 요코다의 유골이라며 가족들에게 뼈를 보냈으나, 일본 정부는 DNA 감식결과 가짜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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