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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포병 정치장교는 왜 미쳐서 자살했을까
주성하기자 2010-12-08 07:17:35 원문보기 관리자 2406 2010-12-14 21:41:24

어느 날 내과에 구급환자가 들어온다며 독방으로 준비하라고 서두른다.


어떤 구급환자이기에 저렇게 북적거릴까.


구급환자라면 당연히 구급실로 가야하는데 왜 내과로 그것도 독방으로 준비하라고 할까.


의문 속에 기대하며 기다리던 환자가 들어왔다.


15사단 반포(대포병)중대 정치지도원이다. 별 하나를 어깨에 박은 소위다.


파릇파릇 젊은 소위동지가 뭔 병에 걸려 저렇게 급작스럽게 독방까지 차지하며 입원했을까. 궁금해 있는 찰나에 군의소 정치지도원이 간호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1983년도에 평양에서 열리는 중대장 정치지도원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던 행사에 친척관계에 문제가 발생되어 군단정치부에서 부결심사가 내려온 후에 정치지도원은 거의 정신병자와 같은 히스테리 발작을 한다는 것이다.

평양 대회에 참가한 북한군 장교들, 한 소위가 일어나 어딘가 바라본다.

자다가 만세 부르며 팔다리를 휘두르고, 아마도 꿈에서 대회장에 나가 만세를 부르는 모양이다.


이걸 정신병자라고 진단하고 군의소로 후송해버렸다.


내과과장은 반포 정치지도원에게 담당간호사 두 명을 배치하고 그들 외에 환자방을 출입금지시켰다.


독방에 침대 하나만이 덩그렇게 놓인 채 방안에 놓여있는 있는 일체 물건들을 모조리 철수시켰다.


식당 화구를 맡아보는 아바이를 시켜서 창문에 쇠살창도 끼워 박아놓고 감방이나 다름없는 시설로 만들어 놓았다.


따뜻한 간호와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다독여 주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는 스트레스성으로 인한 화병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람을 자꾸 격리시키고 외부와 접촉을 차단시키며 심지어 묶어서 눕혀놓는 상황이라 정신병자가 아닌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다.


그 방안에서 정치지도원의 고함소리에 환자들이 불쾌해하고 시끄러워했으나 따로 격리시킬 방이 없어 그곳에 일단 방치하게 되었다.


원래 그는 황해북도 평산군 평화리에 있는 군단 14호 후방병원에 후송돼야 하지만 군단병원으로 가는 후송차는 지정된 시간에만 떠난다.


정치지도원은 일주일 정도 사단 군의소에 있어야 했다.

그동안 담당간호원들이 밥도 먹여주고 세수와 면도를 직접해주었다. 그 환자는 두 팔,두 다리가 쇠침대에 붕대로 꽁꽁 묶여있었다.


언제나 두려운 존재로 어느 때든 돌발적인 행동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낮에도 잠을 자다가 만세소리를 지르며 혼자 목이 터져라 외친다.


본인자체가 얼마나 기대하며 참가해보고 싶었으면 자나 깨나 만세를 부르며 꿈을 꾸는 것일까.


어느 날 반포중대에서 중대 정치지도원 면회가 왔다.


만나보고 싶었던 중대 대원들을 창문 넘어로만 보며 면회시키자 정치지도원은 또 발작을 한다.


그 사람자체는 발작할 때는 제 정신은 아니지만 항시적으로 미쳐있는 히스테리 환자도 아니다.


김일성이가 참가한 중대장 정치지도원대회에 참가해보려고 온갖 노력과 정성을 다 하며 자기중대를 3대혁명 붉은기 전위중대로까지 만들어놓고 영광스런 자리에 참여시킨다는 연락까지 받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을지 살지 모르게 일하던 정치지도원이다.


그런데 삼촌 가족에 혁명화대상이 있다는 신원조회가 나와서 막판에 그 대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그것이 그에겐 정신까지 돌아버리게 스트레스를 주었던 것이다.


당시 북에선 그런 대회에 한번 참가해 김일성과 집체 기념사진을 찍으면 출세에 상당히 도움이 될 때였다.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나를 제발 그 대회에 참가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말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면회 온 대원들도 정치지도원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담당간호원에게 음식과 갈아입을 옷을 전달하고 돌아갔다.


찾아온 전우들을 본 지도원은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든다며 창문 쇠살창을 잡아 흔들며 소리쳐 울고 울기를 거듭했다.


허나 정치지도원은 그날부터 발작증세가 더 악화되고 하얀 석회가루를 발라놓은 바람벽에 머리를 자꾸 짓찧어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곤 하였다.


양다리 양팔을 묶어놓으면 어떻게나 풀어 제끼는지 힘이 모자라는 간호사들은 어쩌지 못하고 문밖에 나오지 못하게 열쇠를 채워 놓는 것이 전부였다.


군의소에 들어온 지 사흘이 되는 날이다.


갑자기 군의소 내부가 슬렁거리고 군의들이 바람같이 뛰어 다닌다. 일반 수술환자를 제쳐놓고 구급수술에 들어갔더니 그 정치지도원이다.


그 지도원은 중대 병사들이 면회 왔으나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 음식조차 간호사들을 통해 들여보낸다면서 내가 죄인인가, 내가 진짜 정신병자냐 목 터지게 고함지르며 발작했다.


그러다 간호원들이 나간 틈을 이용하여 세수도구 주머니에서 접이형 면도칼로 순간적으로 자기 목을 베여 숨통을 잘라버렸다.


하얀 백포와 벽에는 온통 새빨간 피로 물들여졌다. 수술장에 들어갔지만 끊어진 명을 다시 되살리진 못했다.


저녁때가 되어 사단 포병부에서 몇 명만 내려왔다.


장군님의 군인 전사로써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한 자살 행위라며 사단 간부들은 안 오고 포병부에서만 내려와 사망 경위를 요해했다.


그리고 중대 정치일군으로써 중대장 정치지도원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불평과 불만을 억제하지 못해 발작까지 한 행위는 당에 대한 부도덕적인 행위라 환자를 나무람하며 저녁 중으로 매장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76미리 박격포 중대에서 몇 명의 군인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와서 시신을 넘겨받아 그날로 봉분도 없이 매장해버렸다.


그리고 그 지도원이 있던 환자병실의 벽에 묻은 핏자국을 간호원들이 며칠동안 유리로 긁어내며 흔적을 지워버렸다.


그 대회가 뭣이기에 김일성이가 뭣이기에 그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걸로 정신 줄까지 놓아가며 결국엔 죽어야 했을까. 봉분도 없는 땅속에 매장돼 있는 정치지도원이 불쌍하기만 하다.


아마 지금은 저런 일로 미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김정일을 숭배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뿐더러 더구나 같이 집체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더 이상 주변에서 대단하게 봐주지도 않는다.


-이순실 전 북한군 간호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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