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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기]빛을 찾아 만리5 - 홍은영
동지회 10 6703 2005-10-26 10:51:17
빛을 찾아 만리 홍은영

가을도 저물어 찬 바람 분다
헐벗고 굶주리는 우리 동포야
그 누가 광야에서 구원해주랴
일어나라 대장부여 목숨을 걸고
감옥도 죽음도 두렵지 않다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리라

정말 처음 들어보는 노래이지만 그 노래는 그때 왜 그렇게도 내 마음을 사로잡던지
그 노래를 부르며 고개를 넘다보니 어느덧 우리가 추방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무슨 큰 뜻을 품고 혁명하려 가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어요. 일행이 위연 임산에 도착한 것은 밤 1시가 넘어서였어요. 짙은 어둠속 어디선가 개들이 나와 요란스럽게 짖어 댔어요. 그러는 중에 석호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더니 희끄므레 등잔불이 내 비치는 한 집에 들어가더니 한참이나 있다가 나왔어요. 그러고는 우리들 모두에게 짐은 그대로 두고 사람만 내려 따라 들어오라는 것이었어요. 작업반 선전실이었는데 거기서 밤을 지내고 아침에 사업소에서 구체적인 배치가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밤도 깊었지만 우리 모두는 이미 지칠대로 지쳤던지라 정말 정신없이 잤어요. 아침 열 시가 넘어서야 석호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러 왔어요.
“자 이젠 갑시다 이제 모두들 여기 사업소 당위원회에 가겠는데 미리 말해 두지만 변학도 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은 사람이우. 그러니 좀 눈꼴들이 쏘는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할 거웨다.”
“어휴 이제 우리한텐 잃을 것도 빼앗길 것도 없수다. 당비서 밸대로 해 보라지요 뭐.” 제일 뒤에서 나오던 명숙할머니(석호 아저씨의 옛 전우)가 한마디 했어요.
“흥 누군 뭐 짜낼게 있고 빼앗아 낼게 있어서 그렇게 못되게 구는 줄 아우. 사람이 원래 돼 먹기를 그렇게 돼 먹었으니 그러는 것이지.”
석호 아저씨를 따라 가면서 보니 그 곳은 정말로 산골 중에 산골이었어요.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사방을 둘러봐도 모조리 산으로 삥 둘러 막혔는데 그 가운데 옹기종기 집들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 집들은 이상했어요. 지붕을 기와도 아니고, 볏짚도 아니고, 철판은 더구나 아니고, 나무를 쪼갠 것으로 기와를 한 거예요. 가끔씩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여긴 이미 완전히 겨울이에요. 동복을 입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웬 할아버지는 다 해진 개털모자까지 쓰고 어정어정 나와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어요. 학교로 가는 듯한 아이들도 보이는데 거의 하나같이 책을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가로로 맸어요. 그러고는 달리며 웃으며 갈갬질 하며 가는데 그 애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근심걱정이 없는 애들 같았어요.
마을 한 가운데로 들어가자 큰 기와집이 몇 채 보였어요. 그 중 제일 크고 웅장하여 마치 마을 전체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집은 김일성사상연구실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앞에 그보다는 좀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보이는 집은 사업소 당위원회라고 했구요. 우리가 안내되어 들어간 집은 그 중 제일 초라해 보였는데 사업소 관리위원회로 당위원회 옆에 있는 길다란 단층집이었어요.
거기 사업소 노동부에서 우리를 각 작업반에 배치하여 주었어요. 하지만 이미 다 토론이 있었던 듯 키가 크고 나무 막대기 같이 생긴 사람이 우리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가족별로 각 작업반에 배치해 주었어요. 우리는 제6작업반이란 곳에 배치 받았어요. 그 6작업반이라는 곳은 사업소에서부터도 120리나 된다는 대흥이란 곳에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는 제일 가까운 학교까지도 30리가 된다고 하자 언니가 내가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그래서 학교가 가까운 곳으로 배치하여 달라고 사정했지만 그 나무막대기 같이 생긴 노동지도원은 한 마디로 안 된다고 거절했어요. 그래도 좀 다행스러운 것은 명숙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가게 되었다는 거예요. 평양 어느 예술단에서 왔다는 젊은 애기 엄마는 사업소 본부에 떨어지게 되었어요.
아무리 사정하여도 되지 않자 우리는 포기하고 나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였어요.문이 열리더니 사업소 당비서란 사람이 들어왔어요. 작은 키에 뚱뚱하게 생긴 사람이었는데 얼굴은 넓적한데 비해 눈이 너무 작아 마치 흰쌀떡에 팥을 두 알 박아넣은 것 같이 보였어요. 그 사람이 들어오자 그때까지 우리한테 그렇게 나무 막대기 같이 딱딱하게 굴던 노동지도원도 갑자기 노근노근하여져 자리를 내고 옆으로 물러났어요. 당비서는 금방 나가려던 우리 모두를 그 자리에 그대로 앉게 했어요.
“응 이 사람들인가?”
“예 이미 토론 된 대로 각 작업반 별로 배치를 끝냈습니다.” 노동지도원이 연방 굽신거리며 말했어요.
“그래 피곤들 하겠구만. 앉소, 앉소. 내 여기 초급당 비서 배준병이요. 먼저 자기 소개들부터 해 보지. 애기엄마는 누구라구?”
“김애순이라고 합니다. 모란봉예술단에 있었습니다.” 애기엄마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어요
“응 그래 그래. 노래를 잘하더구만. 내 텔레비에서 많이 봤소.”
“전 기악조에 있었습니다.”
“뭐 기악조? 그건 또 뭔데?”
“노래를 부른 게 아니고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는 조에 속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 뭐 다 비슷비슷한 거구만. 그래 그건 그렇고 그 옆에 앉은 처녀는?” 문뜩 당비서가 제 옆에 앉은 언니를 보며 물었어요.
“홍혜영이라고 합니다. 평양 도시설계연구소에서 연구사로 일했습니다.” 언니가 조용하게 대답했어요.
“그래? 곱게 생겼구만, 아주 곱게 생겼어. 몸매도 호리호리 하고 키도 마침하고 올해 몇 살이지?” 당비서가 이상하게 언니를 자세히 훑어보면서 관심을 가지고 물었어요.
“올해 스물 두 살입니다.” 언니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하며 대답했어요.
“올해 스물 두 살이다? 나이도 적당하구.... 도시 설계연구소에서 연구사로 일했단 말이지?”
“네” 언니가 더욱 어쩔 줄을 모르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대답했어요.
“동무! 임산 사업소라는 데가 뭘 하는 곳인지 알아?”
“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대체로...” 언니가 말끝을 흐리었어요.
“흐흐흐 정확하게는 모르고 대체로 안다? 그것 참 재미있구만 재미있어. 그래 동무는 깊은 산중에 들어가 통나무를 베어내고 끌어내리는 일을 할 수 있겠어?” 당비서는 아주 재미 있다는 듯 어깨까지 흔들며 웃어대더니 다시 물었어요.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해야지요 뭐.” 언니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대답하였어요.
“아니야 동무는 못해. 황소 같은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인데 동무같이 평양시내에서 곱게만 자란 처녀가 그런 일을 해. 여! 노동지도원 동무. 저 동무네를 어디다 배치 했다구?” 당비서는 갑자기 웃음을 싹 거두고 노동지도원에게 물었어요.
“예. 저 토론 된 대로 6작업반 대흥 임산에 배치했습니다.”
“뭐 저 동무네를 6작업반 대흥 임산에 배치 했다구. 아니 여보 지도원동무! 저런 어린 처녀를 거기다 배치하면 어떻게 해. 더구나 그 동생은 아직 학교 다닐 나이 같은데 그런 사람들을 거기 보내면 어떻게 하는가 말이야.” 당비서란 사람이 노동지도원을 험하게 꾸짖었어요.
“예. 저 전 그저 토론 된 대로 배치했는데...” 노동지도원이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했어요.
“뭐 토론 된대로! 아니 여보 노동지도원! 그거야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원칙이구 사람마다 사정이 다른데 꼭 그렇게 규정대로만 하면 어떻게 하나. 더구나 우리 사업소는 앞으로 설계할 것도 많겠는데 저 동무네를 6작업반 같은 심심 산골에 보내면 어떻게 하는가 말이야.” “예 시정하겠습니다. 곧 시정하겠습니다.” 막대 노동지도원이 연방 흐르지도 않는 땀을 씻으며 몸둘 바를 몰라 대답했어요.
“여기 사업소에 두기로 하라구. 당분간 연구실 관리원을 시키겠어. 그리고 동생은 다시 학교에도 다니게 하라구. 알겠어!”
“예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무리 사정하여도 들은척하지 않던 막대 지도원이 당비서 말 몇 마디에 당장 우리의 거처지를 사업소로 변경하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운명에 그것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 알지 못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거기서 연구실 관리원과 작업장 노동자는 정말 하늘과 땅과 같이 차이가 컸어요. 아무튼 우리는 사업소에 떨어지고 그 대신 애기엄마네가 6작업반으로 가게 된 것이에요. 하지만 그 애기엄마는 그런 것에는 애초에 관심도 없는 듯 처음부터 머리만 숙이고 있었어요.
“다음은 그 학생 옆에 앉은 아주머니 말이요. 어디서 뭘 하다가 왔지?” 명숙 할머니를 보고 하는 말이었어요.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흥2동에서 가내 작업반을 하다가 왔수다.” 명숙 할머니 무엇 때문인지 곱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어요.
“모란봉구역에서 가내 작업반을 하다가 왔다? 흠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구 말구.”당비서는 무슨 알아듣지 못할 말을 혼자 중얼거리더니 다시 우리한테 물었어요.
“여기서 위대한 수령님의 덕성실기 ‘어머니는 자식을 차별하지 않는다’를 읽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드시오.”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한 사람 두 사람 몽땅 손을 쳐들었어요. 사실 말이지 김일성의 ‘인민들 속에서’라는 덕성실기는 수십 권이나 되어요. 그런데 그걸 누가 다 읽었겠어요. 아니 어쩌다가 조직에서 학습제목으로 내려 먹여 할 수 없이 읽었다고 해도 그걸 기억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그러니 몽땅 손을 쳐들 수밖에 없었지요.
“뭐 모두 못 읽었다! 이거 확실히 문제가 있구만, 확실히 문제가 있어. 그렇소. 어머니는 자식을 차별하지 않소. 죄를 범한 자식이라 하여도 어머니는 절대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이요. 동무들의 남편, 아버지들은 비록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해 법적으로 처리되었지만 동무들은 달라. 동무들은 여기서도 일만 잘하면 당에도 입당할 수 있고 또 나아가서는 자식들을 대학에까지 보낼 수도 있다는 거요. 이게 바로 우리 당이 말하는 광폭정치 광폭정치(廣幅政治): 폭이 넓은 정치. 대외, 대내적 의미를 갈라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내적으로 쓰이는 의미이다. 과거 조국 앞에 죄를 진 사람들까지도 김정일이 넓은 아량으로 관대하게 다 용서해 준다는 의미로 보면 되겠다. -편집자주>
의 핵심이거든. 어떻소. 일을 잘해야겠소, 말아야겠소.” 당비서가 우리들을 보며 물었어요.
하지만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바로 이때였어요. 명숙 할머니가 일어섰어요.
“저 당비서 동무 제가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요. 물어 보시오.”
“비서동무 올해 나이가 얼마나 됐수?”
“뭐요?” 그건 정말 뜻밖에 물음이었어요. 우리 모두는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어요.
“내 보기에는 해방이후 둥이 같아 보이는데 난 비서동무가 이 세상에 태여 나기 전에 당에 든 사람이웨다. 그러니 다시 당에 들 필요는 없을 듯 싶고, 일을 잘하면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준다고 했는데 이미 대학을 다니던 자식들까지 내 쫓아 이런 임산에 보내는 판에 그런 자식들을 다시 대학에 보내준다는 말이시우?”
당비서 얼굴이 갑자기 수수떡이 되었어요. 금방 뭐가 폭발 할 것 같았어요.
“이 노친네 보자보자 하니까! 좋수다. 내 분명히 말하지요. 우리도 당을 믿고 끝까지 따라오겠다는 사람만 그 따사로운 품에 안아 주지 노친네 처럼 끝까지 삐뚜로 나가겠다는 사람은 안아 주지 않아.”
“예-에 이젠 늙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누가 안아주겠다고 해도 반갑지도 않수다. 오히려 징그럽기만 하지. 그러니 굳이 나까지 안아줄 생각은 안 해도 될 것 같수다. 호! 호!” 명숙 할머니 뼈있는 웃음을 웃으며 말을 맺었어요.
아무튼 그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명숙 할머니는 혼자인데도 제일 먼 대창 임산작업장에 배치 받았어요. 우리가 사업소 노동과에서 작업반들을 배치 받고 나오는데 석호 아저씨가 기다렸던 듯 다가 왔어요. 우리들의 배치 소식을 듣더니 어두운 얼굴을 하고 말했어요.
“에잇, 망할 자! 또 그 버릇이 살아나. 백두산 호랑이 도대체 저런 개자식은 물어가지 않고 뭘 먹고사는지 모르겠거든.”
저는 그게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짐작이 갔어요. 당비서를 보고하는 소리겠지요. 하지만 그때 석호 아저씨가 왜 당비서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지는 미처 몰랐어요.

(다음 호에 계속)

탈북자동지회 회보 2003년 4월[탈북자들] 연재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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