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깡패 우두머리(살인강도)라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최초공개) (수정본) |
---|
먼저 이 글은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어리석은 저에게 계시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이 비밀을 보여주신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여호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 #북한의 김일성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깡패 우두머리였다.# 표도르 째르치즈스키가 쓴 김일성 이전의 북한이란 책에 ‘김일성은 깡패였나?’에 의하면 러시아 자료가 나옵니다. 첫째 출처는 안드레이 란코프가 이반 로보다와 한 인터뷰이다. 로보다는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장교로서 1940년대 초기에 붉은 군대 88여단에 복무한 사람이다. 저는 제88여단에서 1944년부터 일하게 되었지만, 이전에 나왔던 (여단)자료도 볼 수 있었어요. 우리는 이 여단 당위원회 회의록을 봤는데, 이 회의록에서 김일성이 원래 제13항일군에입대하기 전에 공산주의자들을 죽였고, 농민까지 강탈했다는 주장이 있었어요. 즉, 그가 일반 훈후스(만주에 있었던 강탈 범죄 집단 일원을 지칭하는 러시아어 명칭이다.) 패당의 우두머리였다는 주장이었어요. 그런데 사실인지 모르겠고, 확실하게 말씀을 드릴 수도 없어요. 이 회의록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일부는 알렉산드르 아가토프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문서들이 갑자기 사라졌어요. 문서의 대부분은 아마 이미 파괴된 지 오래된 것 같아요. 어떤 의도로 진행된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의 일반적인 태만으로 벌어진 거죠. 시급히 쓴 한자들이 적혀 있는 질이 나쁜 찢어진 종잇조각들을 누가 필요로 하겠어요?“ (이반 로보다와 한 인터뷰, 1990년 11월) 두 번째 출처는 1993년에 러시아 잡지 ”노보예 브레먀“에서 나온 기사이다. pp32-34. “여단에서 당 조직 회의들이 자주 진행되었고, 이 회의에 참가하는 자는 각 대대의 공산당 당원 중에 선출되었다. 나는 이 회의들에 참가할 의무가 있었다. 심심한 일이 었지만, 잠깐이라도 잘 수 없었다. 연설자들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광란적으로 외쳤고, 자제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1944년 7월에는 중국인들의 표현에 따르면 ‘개미 떼에 막대기를 놓아 버렸다’와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인 대대 정치위원은 김일성과 그의 부하가 중국 지린성(길림성)을 기습했을 때 공산주의자와 빨치산을 총살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는 살해당한 사람들의 이름도 말해주었고, 범죄가 벌어진 위치도 알려 주었다. 추가로 김일성의 집단은 현지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강탈한 훈후스의 패당 둘과 아주 친밀했다고 얘기했다. 대단한 소란이 벌어졌다. 여단에서 일본인이나 장제스 군대 군인을 죽이는 것은 거의 공훈으로 봤지만, 자기네 사람, 공산주의자를 죽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잡을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잡으면서 자리에서 연달아 뛰어 일어섰다. 결국 중국공산당 당원 2명, 바로 여단장 저우바오중(주보중)과 정치위원 리자오린(이조린)이 어느 정도 질서를 세웠다. ...... 회의는 김일성에게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부인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씌울 수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부인하지도 않았고 책임을 졌다. 그는 친히 총살형을 집행한 적이 있다고 자백했고,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사형시켰다고 했다(물론 그 때 김 씨는 트로츠키라는 볼셰비크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조선인 대표자들에게 항상 과도하게 컸던, 아첨하는 고함 소리와 박수갈채가 나오지 않았다 ....... 김일성은 이것을 나쁜 징조로 봤다. 자기게 사람들도 지지하지 않으니까....... 바로 이 자리서 대대장의 운명을 결정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나중에 소련 동지들과 상의하도록 결정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조선인 대대의 참모 가건물에 들어갔다. 가건물 안에서 병사 변소와 같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미국제 주정을 꽤 많이 마신 김일성이 벤치에 누워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의 촉탁관이 ‘대대장의 입은 마르고 비어 있지만, 그의 바지 속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말을 했다. 며칠 동안 대대는 모스크바에서 올 결정을 불안하게 기다렸다. 모든 사람들은 중대한 조치를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날 대대장을 해임하지 않는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나왔다. 모스크바 측의 이러한 결정에 침묵의 반응이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화를 내면서 이를 뿌득뿌득 갈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어깨를 으쓱했고,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지은 사람들도 있었다.” 위의 사료들을 분석해보자, 한편으로 두 개의 증언이 있어서, ‘김일성 고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두 번째 칼럼의 저자 이름이 투마노프는 필명인데, 이 필명을 사용한 사람은 바로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인 이반 로보다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첫째, “노보예 브레먀”에 ‘필자는 칼럼을 죽은 친구의 이름으로 서명해 달라고 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즉, ‘투마노프’(실제 게오르기 투마노프, 즉 “노보예 브레먀”에 게재된 칼럼 필자의 친구는 극동전선 간부부 상급 보좌관이었다. 군사 계급은 소령이었다.)는 필명이다. 둘째 기사에서 “항상 과도하게 컸던, 아첨하는 고함 소리와 박수갈채”라는 조금 이상한 표현이 나왔다. 1985년에 나온 로보다가 쓴 책에서는 “고함치는 연설이 과도하게 크도록 요구했다”(코레아의 모자이크, 1985년)라는 비슷한 표현이 나왔다. 둘째, 이 사건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로보다의 인터뷰와 투마노프의 칼럼에 나온 것 외에는 없다. 이것은 또 하나의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셋째, 나중에 로보다의 인터뷰에도, 투마노프의 칼럼에서도,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 측의 대표였던 테렌티 시트코프가 나중에 주헝가리 소련 대사가 된 다음에, 헝가리 지도자 가다르 야노시에게 ‘너를 처형시키지 않아서 참으로 아쉬워’라고 했다는 소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소문에 대해 언급한 사료가 없는 것 같다. 따라서 ‘투마노프’는 로보다의 필명으로 보인다. 인터뷰와 칼럼의 내용은 약간 다르다. 인터뷰에서 로보다는 직접 김일성을 고발하는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반면에, 투마노프는 직접 봤다고 주장했다. ‘투마노프’가 실제로 로보다였다고 한다면, 그는 칼럼에서 상상력을 써서 과장하고 작은 거짓말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실제로 사건을 본 사람과 이야기한 다음에 ‘투마노프’라는 공동 필명으로 칼럼을 발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무튼 이 사건에 있어서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고,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필자(표도르 째르치즈스키)는 현재 시점에서 생각할 때, 김일성 고발 사건이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김일성이 실제로 훈후스와 함께 공산주의자 학살을 했는지 입증하는 사료도 그리고 반증하는 사료도 부족하다고 본다. (여기까지는 표도르 째르치즈스키의 ‘김일성 이전의 북한’ p104-108페이지에서 인용함) ? 여기서부터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제게 밝혀주신 내용이다. 첫째, 주 하나님의 계시에 따르면 두 번째 투마노프 칼럼에 나온 내용에서 “나는 이 회의들에 참가할 의무가 있었다. 심심한 일이었지만, 잠깐이라도 잘 수 없었다.”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 “나”는 회의 관계자이고 “잠깐이라도 잘 수 없었다”고 했으니 여단 당회의록을 작성하는 서기인 것이다. 둘째, 투마노프 칼럼에서 “ 다음날 아침 나는 조선인 대대의 참모 가건물에 들어갔다. 가건물안에서 병사 변소와 같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미국제 주정을 꽤 많이 마신 김일성이 벤치에 누워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의 촉탁관은 ‘대대장의 입은 마르고 비어 있지만, 그의 바지 속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말을 했다” 라고 하니 칼럼에 나오는 “나”는 김일성(김성주)보다 계급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인 대대 참모 가건물에 무단으로 출입하고 김일성을 관찰하고 촉탁관의 보고를 받는 사실로 이 사람은 소령 이상의 계급인 것이다. 셋째, 칼럼에서 김일성이 거짓말로 변명하는 것을 보고 “나”는 “물론 그 때 김씨는 트로츠키라는 볼셰비크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도 몰랐다”라고 논평을 하니 여기 “나”란 인물은 정치교육을 담당하는 장교인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은 제88여단 정치부장 셀레긴 소령(세레긴 바실리 예브세예비치 소령)이다. (셋째와 셀레긴에 대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다른 자료를 통한 추론 결과이다.) ?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에 근거하여 표도르 째르치즈스키가 투마노프 칼럼이 이반 로보다가 쓴 것 같다는 근거 세 가지를 반박하겠다. 첫째 근거의 반박: 투마노프 칼럼에 나오는 이상한 표현 즉, “항상 과도하게 컸던, 아첨하는 고함소리와 박수갈채”는 여단 당회의록을 작성하던 서기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법인 것이다. 이것이 이반 로보다의 표현이 아니라는 주장은 이반 로보다의 다른 책들에서는 이런 표현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반 로보다의 책 “코레아의 모자이크”에서 비슷한 표현이 나온 이유는 로보다가 북한에 관한 책을 쓸 때 여단 회의록을 참고하여 서기의 표현을 그대로 따라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의 다른 책에서는 이런 표현이 전혀 나오지 않으니까. 둘째 근거의 반박: 둘째 근거는 그 자체로 잘못 된 것이다. 이미 서기가 쓴 걸로 가정하면 깨져버린다. 셋째 근거의 반박: 셋째 근거는 테렌티 시트코프가 주헝가리 소련 대가가 된 다음에, 헝가리 지도자 가다르 야노시에게 “너를 처형시키지 않아서 참으로 아쉬워”라고 했다는 소문은 정치부 부장 셀레긴 소령, 이반 로보다 상위, 라자르 두만 소령 그리고 콘드라티 레페신스키 등 그 외 정치부 소속 멤버들이 무슨 정보가 있을 경우 서로 주고 받는 정보인 것이다. 정치부 멤버들 사이에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서 88여단이 해산된 뒤에도 정치부 멤버끼리 서로 연락하며 공유하는 정보이지 이반 로보다만 아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투마노프 칼럼을 이반 로보다가 썼다는 근거 세 가지는 다 파괴되었다. 그러니 노보예 브레먀 잡지에 나온 칼럼은 정치부장 셀레긴이 쓴 것이 맞다. 왜냐하면 부여단장 슈린스키나 참모장은 그들의 업무 성격상 전혀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1993년 이전에 사망했으니까. 따라서 안드레이 란코프와 인터뷰한 이반 로보다의 증언과 노보예 브레먀 잡지 칼럼을 통해 셀레긴의 주장이 일치하니까 “김일성 고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가짜 김일성인 김성주는 깡패 두목(살인강도)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신고 0명
게시물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