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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랑의 고백..< 2 >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1005 2022-05-05 15:14:43
2편

 

 

● 김정일의 성격은.??


김정일은 겨우 7세 때 생모를 잃었고, 그의 아버지김일성은 재혼했습니다. 권력 계승자로 추정되고있던 김정일은 야심만만한 그의 계모가 자신의 아들을 김일성의 권력 후계자로 삼으려는 움직임에대항해서 책략을 써야 했습니다.

김정일의 운명과 심지어 그의 생명까지도, 그가 한편 두려워하면서 또 한편 존경하기도 하는 아버지의 신임을 약화시킬 수 있는 구실을 그의 정적들에게 제공하지 않는 데에 달려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을까 초조했으며, 그의 행동은 그런 불안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성혜랑은 말합니다. 김정일의 마음속에서는 그런 불안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1994년에 사망한 김일성은 그의 장남이 1970년 성혜림과 꾸민 이 변칙적인 살림을 끝내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무섭기는 했지만 김정일은 성혜림과 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여자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영화광으로서 영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으며, 성혜림은 북한 영화계의 아름답고 유명한 스타였습니다. 이 공통의 관심을 통해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성혜림은 김정일과의 결합을, 그녀 가족에 대해 가해지고 있던정치적 압력을 제거하는 한 가지 수단으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혜림의 아버지는 남한의 부유한 지주였는데, 나중에 공산주의자들에게 동조하여 월북하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공산주의를 위해 그렇게 헌신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들인 북한은 그를 적대계급 출신이라고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족을 살리겠다는 정치적인 의도는 성혜림의 속셈의 일부에 불과했다고 언니 성혜랑은 말했습니다. 

성혜림은 김정일을 진정으로 좋아했으며, 그가 생모 없이 자란 것을 가엾게 생각했다합니다. 만약 아버지 김일성의 반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면,이 두 사람의 결합은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성혜랑은 믿고 있었습니다. 

성혜랑은 회고록에서 "만약 주변 상황이 달랐다면그들은 훌륭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여,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 자신이 권력을 계승하기전에는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그들의 내연 관계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김정일과의 생활은 호화로웠습니다. 김정일은 그가족들을 외딴 저택과 해변의 휴양소에 격리시켰으며, 이따금 그들의 해외쇼핑여행을 허용하였습니다. 그들의 풍요로움은 북한 대다수 인민들의 가난과는 너무 큰 대조를 이루웠습니다.

성혜랑은 이따금 김정일이 자기 지배하에 있는 인민들의 운명에 대해 무관심함을 보고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김정일은 사치스런 축제를 위해 헤프게 돈을 쓰면서 주민들에게 그호화로운 행사에 참가하도록 강요했다. 그들의 굶주림을 생각하면서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들도 내동포인데, 나는 아무 도움도 줄 수가 없었다"

성혜랑 자신의 생활이 엄격하게 규제되지는 않았지만, 역시 부자유스러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정일은 그의 가족의 이동과 소재에 늘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여행은 허용되고 있었지만,그때마다 김정일의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늘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갇혀 있었다" 고 성혜랑은 말했습니다. 그들은 늘 남에게 발각될 위험에처해 있었습니다. 

한 때 이런 일이 있었다합니다. 김정일의 아들 정남이 네 살 때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정남의 계모와 그녀 아들이 바로 이 병원을 공식 방문하여 소아병동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정남의 머리맡에 앉아있던성혜랑의 친정어머니는 병석의 어린것을 등에 둘러없고, 창문을 기어나가, 병원 근처의 포플러 나무들 밑 기슭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어머니는 나무 잎을 밟는 바삭 바삭 소리가 너무크게 들리지 않도록 한 발짝 한 발짝을 조심스럽게옮겼다"라고 성혜랑은 회상합니다. 그 후, "우리는 그 병원에 다시 갈 수조차 없었다"라고 성혜랑은
말합니다. 나중에, 그 병원이 남의 눈을 피하는데,편리한 곳이 된 후, 그 병원은 우리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가 되었다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영화배우 출신의 아내 성혜림에대한 김정일의 애정은 식어갔습니다. 그는 여자에대해 난잡한 사나이였습니다. 그는 적어도 두 명의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일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그 여자들이 서로 마주치지않도록 스케쥴을 짜야했기 때문에, 성혜랑과 동생혜림이 누리고 있던 제한된 행동의 자유는 더욱 조여들게 되었습니다.

성혜림은 그와 같은 역경을 견뎌내는데 전혀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김정일이, 자기의 배우자로 아버지가 정해주었으나 자기 마음에는 들지 않는 김영숙과 정식으로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을 이겨내려고 성혜림은 무척애를 썼습니다. (3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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