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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랑의 회고..< 1 >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1865 2022-05-11 17:32:10
《 1 》편



1997년 2월 한국에서 피격되어 사망한 김정일의처조카 이한영의 어머니인 성혜랑이 미국 망명 후쓴 글이다.

다시 말해 성혜랑은 김정일의 첫 번째 부인(김정남의 모친,성혜림)의 언니이다.?

이 글은 김정남의 외할머니 김원주에서부터 시작되어 그 다음 세대인 성혜랑, 성혜림 대를 거쳐 김정남, 이한영 대까지 3대에 걸친 회고하는 글이다.이 글의 일부분은 성혜랑의 모친 김원주에 의해 써졌었고 대부분은 성혜랑에 의해 써졌다.

● 14년만에 받은 아들의 전화

이 애는 왜 이런 위험한 방법으로 14년만에 전화를 했을까? 우리의 대화는 도청될 것이다.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절박하게 이 애가 전화를 걸지 않으면 안 되었을 처지에 내가 맞춰야 한다는 가슴 저린 모성과 최대한의 안전을 모색해야 하는 엇갈림속에서 전자적 속도의 사리판단을 타고 내 아들을보호해주십사 호소를 깔며 정보를 흘리는 의도적실수를 했다.

?이것은 남한 당국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내가 탈북하려고 한다는 것을 전하면 살 길이 막힌 내 아들을 보살펴 주겠지라고 타산했다. 이것은 분명 실수였다. 분별을 잃을 정도로 가난한 내 아들을 부추겨
전화를 걸게 하고 그것을 녹음하여 특종의 명성을노린 상업주의 언론이 붙어 앉아 시킨 전화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며칠간 매일 새벽 5시에 전화가 왔다. 나는 이불 속에서 전화를 받았고 일주일간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 사람이 지탱할 수 있는 긴장의 한계는 얼마인가. 좀 더 지났더라면 나는 순간에 돌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바빌로바 집은 방이 다닥다닥했다. 관리원들은 전부 귀이고 그들은 보위원 이상 각성된, 선발되고 훈련된 ‘죽어도 공산당’들이었다.
나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음을 느꼈다,

이때 내 아들에게 전화를 걸게 하고 감청한 녹음 테이프가 거침없이 남한 일간지들에 공개되었다는
것을 나는 오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안보라는 이름으로 언론의 윤리도 공정성도 제껴놓고 감청 내용을 팔아 특종의 명성을 날린 기자가 있는가 하면 그 뒤에서 내 아들은 도덕적으로 참패당했고 14년 만에 죽은 줄 알았던 아들과 나눈 우리만의 말 엄마와 아들의 정은 무참히 능욕당했다.

일남의 전화가 있기 전까지 미국에 가있던 남옥이는 엄마를 서둘러 데려갈 의향이 없었다. 그것은 내가 떠나면 정남과 이모가 어떤 타격을 받을 것인가를 알았고, 믿고 나를 병치료 보내준 빠빠(김정일)에게 의리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태는이제 돌변했다.

나는 선택해야 된다. 모든 것을 지도자에게 고백하고 평양으로 들어가느냐 이번 기회에 서방으로 나가느냐. 내가 전화를 잘못 받고 안기부의 작전에 잡힌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실대로 생긴 일을 보고하면 김정일 비서는 더 다른 처벌은 없을 것이나 나를 평양에서 떠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그 울타리 안에서 죽는 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한편 일남이가 전화에서 내게 한 말들에는 뼈를 저미는 그 애에 대한 가엾음이 맴돌고 있었다.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내가 파산하지도 않았을 거야.”

“가난해지니까 친구도 달아나 모두 나를 슬슬 피하는 것 같애.”

4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순진하기가 아이 같다.
“걱정 마라. 이제 엄마가 나가면 글을 써서 먹구 살자꾸나”

“정말? 지금 여기서 거기 글들이 잘 나가. 엄마 써놓은 단편 많지? 아 나두 집을 살 수 있겠네. 전셋집이래두 괜찮아.”

당장 집이 손에 잡히는 듯이 좋아한다.

“당장 그래두 가지는 못한다. 그래도 엄마가 너를위해 돈벌이를 하지 뭐 파출부래도…”
불쌍한 녀석, 전셋집을 다 아는군.
“엄마 우선 거기 신덕수(약수)라도 좀 받아서 팔 수 없을까?”

관저에 앉아서도 신덕수가 어떻게 들어오는지 모르고 있는데 도대체 얘가 신덕수를 어디서 받아서팔겠다는 거야. 나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막혔다. 내가 다 물리치고 떠나야 한다고 결심을 굳힌 것은 신덕수 얘기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얘가 이 정도로 영낙했으면 무슨 수로 살아갈 수 있으랴.

돈밖에 모르는 그 사회에서 누구를 믿고 어떻게 살것인가.(성혜랑은 이화여고를 다니다가 부모님을따라서 월북하였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정에 밝았다.)

“그래, 나 가겠다.”

나는 딸에게 신덕수 얘기, 전셋집 얘기 제 오빠의
그 한심한 상태를 다 알려줬다.

“그럼 엄마 제네바로 와."

딸의 말은 언제나 내게는 결정적이었다. 혜림이를꼬드겨 제네바 여향을 가자고 아닌 척하면서 매일다그쳤다.

그리하여 1996년 1월 5일 나는 모스크바를 떴다.


※ ☆☆☆☆☆☆☆

《 참고 》중요 글


{ 본서의 글 중 마지막 부분에 아들 이한영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은 놀랍게도 성혜랑은 아들이 북한이 아닌 남한 당국에 의해 암살되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


< 2 >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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