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차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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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은 분명히 하나의 나라였다. 지방마다 생활 문화의 차이는 조금씩 있었지만 피와 언어는 같은 민족이다. 그러나 1945년 해방 후 남북은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 분단 80여 년 동안에 많은 차이가 생겼다. . 물론 경제적 차이가 제일 심하게 나지만 나는 오늘 남북한의 차이 중에서 누구나 하루에 한 두잔 씩은 마시는 차 문화의 차이점에 대하여 이야기 하련다. . 한국 국민들은 유명한 보이차와 홍차 그리고 한국의 유명한 녹차까지 수십 종의 각종 차들을 항상 보니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사실상 우리 탈북자들은 여기에서도 많은 제도의 차이를 느낀다. . 북한 땅은 우리의 형제들이 사는 내 고향이지만 정말 미개하다고 할 만큼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마시는 문화가 전혀 없다. 커피는 어찌 보면 인간들의 생활에서는 뗄 수 없는 세계적으로 제일 공통적인 음료라 할 수 있다. . 그러나 북한에는 고난의 행군으로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밀수품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커피나 차라는 것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전 국민의 99,9%를 넘었다. 국가적으로 커피나 차를 수입하거나 생산하는 곳도 파는 곳도 없다. . 우선 먹을 것이 부족하니 인민들은 자체로 차를 만들어서 마신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일생을 그렇게 살다가 간다. . 한국의 차 문화는 참으로 다양하고 대단하다. 가는 곳마다 각종 차가 다 준비되어있다. 사무실이나 개인 집들에서도 찾아온 손님에게 의자를 권하고는 하는 제일 첫마디가 “무엇을 마시겠습니까?”하는 따뜻함이 넘친다. . 상점에도 각종 커피와 차들이 가득하다. 가는 곳마다 커피와 차집들이 있다. 오죽하면 작은 나라 한국이 세계적으로 1인당 커피 소비량이 1-2위의 자리를 다툰다. 2024년 한국의 커피 수입액이 2조원에 달할 정도다. . 그만큼 한국 사람들의 생활에는 자유와 여유가 흐른다. 한국에는 친구들과 또 찾아온 손님들과 따뜻한 커피나 차 한 잔을 마시며 웃을 수 있는 시공간이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그 자유와 여유가 저 북한 인민들에게는 전혀 없다. . 수십 년 무역기관에서 외국을 드나들던 나도 북한 생활 50년 동안에는 커피라는 것을 10 잔도 마셔보지를 못했다. . 물론 평양의 호텔들에는 커피도 차도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온 대표단들과 면담을 할 때에만 국가의 승인을 받아서 한잔씩 마실 수가 있다. . 물론 2000년대 초부터는 평양의 호텔들에는 외화벌이를 위한 커피 방이 생겼다. 1달러에 작은 종이컵으로 커피 4잔을 살 수 있다. 친구들과 한두 잔 마셔보았다. 그 곳은 일반 백성들은 갈 엄두도 못 낸다. . 북한은 중앙기관 사무실과 지방기관 사무실에도 손님이 와도 차는 고사하고 물 한잔도 내놓는 문화가 일절 없다. 친구들과 손님들 사이에도 그냥 앉아서 맨입으로 이야기를 한다. 가정집들도 역시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 국가가 아예 커피나 차를 생산 공급할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정말 여유가 없고 딱딱한 마른 인간들이다. 김일성주석이 가난하고 못사는 집에서 나온 사람이어서 그런지 인민들에게 차를 마시는 것을 장려하지도 않았고 커피를 마시면 부르죠아 취급을 했다. . 한국에 와서 보니까 우리 민족의 풍속에는 분명히 차를 마시고 대접하는 좋은 문화가 존재했었다. 그래서 관아들에도 차를 끓여 공급하는 다모 까지 두고 있었던 것이다. . 나는 한국의 차 문화만은 꼭 북한으로 전파하고 싶다. 그래서 가꿈은 내가 살아서 평양에 갈 수만 있다면 평양에 자그마한 찻집을 열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 한국의 종북 좌파들은 이렇게 자유롭고 여유로운 속에서도 무엇 때문에 인민들에게 커피한잔 마실 자유도 주지 않는 북한 독재자에게 충성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숙제를 누가 풀어주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 2025.05.07 김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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